"92세 큰형님이 반장아입니까"…이 마을 어르신들 건강 비결이 궁금해

[요즘 질병청 뭐함?] '지역간 건강격차 해소사업' 운영
지역 맞춤형 어르신 건강 프로그램…'만족스럽다' 평가 이어져

편집자주 ...질병관리청의 태동은 아이러니 하게도 감염병 확산과 궤를 같이 한다. 2003년 사스를 계기로 질병관리본부가 신설됐고, 2020년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지금의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됐다. 코로나19 기간 신속한 방역 대응으로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기도 한 질병청의 존재감은 오히려 국내에서 평가절하 된 감이 적지 않다. 방역의 최전선에서 국민 보건 향상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질병청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 본다.

경남 남해 서호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밴드를 이용해 근력운동을 하고 있다. (질병청 제공)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우리 큰형님! 92세 최고령 형님이 반장입니다. 이 나이 많은 어르신들 22명이 모여서 스트레칭도 하고 밴드로 근력운동도 하는데 호응이 어찌나 좋은지 몰라예. 예전엔 아프기만 하면 병원 쫓아가는 것밖에 모르던 어르신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내 몸은 내가 지킨다'를 신조로 삼는다 아입니까."

일주일에 두 번 경남 남해군 서호마을에서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근력 강화 운동을 강의하는 감정자씨(71)는 29일 기자와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감씨는 서호마을 이장의 권유로 뒤늦게 운동을 공부하고, 질병청이 시행하고 있는 지역간 건강격차 해소사업 중 하나인 어른신 건강관리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국가에서 하는 프로젝트에 마을 강사로서 톱니바퀴가 된 것이 정말 뜻깊고 뿌듯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변화에 감동하고, 좀 더 큰 틀에서는 나라를 위해 보람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든다고 했다.

감씨는 "만성질환은 근육이 감소하면서 오는데, 20대부터 80대까지 40%까지 떨어지는 근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운동과 영양관리뿐"이라며 "이렇게 어르신들의 건강관리를 해줌으로써 병원에 쓸데없이 들어가는 나랏돈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수명은 기대수명에서 질병 또는 장애를 가진 기간을 제외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특별한 이상 없이 생활하는 기간을 말한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보건당국은 지난 2008년부터 각 시군구별로 258개 지역에서 만 19세 이상 성인 약 900명, 총 23만명의 대상자를 선정해 매년 5월부터 7월까지 건강행태 및 만성질환, 삶의 질, 의료이용 등의 항목을 조사해왔다. 조사는 조사원이 직접 가구를 방문해 1대1 면접으로 진행한다.

문제는 조사를 토대로 분석해보면 각 지역별로 건강관리에 따른 지표가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고위험음주율(최근 1년간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자는 7잔 이상, 여자는 5잔 이상을 주 2회 이상 마신다고 응답한 사람의 분율)의 경우 지난해 강원이 16.1%로 가장 높게, 세종이 6.1%로 가장 낮게 나타났다. 2021년에도 강원은 가장 높은 14.4%를 기록했고, 세종은 7.6%로 가장 낮았다.

비만율의 경우 가장 낮은 경기도 과천시(20.6%)와 가장 높은 충북 단양군(45.6%) 간 2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걷기실천율은 경남 함양군이 21.6%로 최하위를 기록했고, 경기 부천시 오정구가 69.8%로 가장 높았다.

흡연, 음주, 신체활동, 비만 등 건강관리 소홀은 만성질환을 야기한다. 질병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만성질환으로 인한 진료비는 71조원으로 전체 83조원의 85%를 차지했다. 최근 3년간 만성질환 진료비 비중은 2018년 83.7%→2019년 84.5%→2020년 85%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질병청은 지난 2017년부터 각 지역별 질병과 건강격차를 줄이기 위한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질병청 관계자는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를 보면 지역별로 건강 지표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수년간 문제 해결을 위해 보건사업을 수행해왔지만 개선되지 않은 경우가 빈번했다"며 "지표가 열악하게 나타나도 지자체의 관심부족, 재원마련 어려움 등으로 자발적인 사업 추진이 힘든 곳들이 많아 질병청이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우선 질병청은 권역별 질병대응센터를 만들어 지자체, 연구기관 등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면서 지역의 건강 격차 발생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추진 전략 등을 마련하고 있다.

경남 남해군 서호마을에서 진행하는 '65세 이상 노쇠 위험군 건강관리 서비스 제공사업'도, 경기 시흥시의 '주민참여 신체활동 활성화 및 건강아파트 만들기 사업'도 이렇게 탄생했다.

경남 남해군의 경우 '65세 이상 노쇠 위험군 건강관리 서비스 제공사업'으로 2020~2022년 동안 국비 6억원, 군비 6억원을 투입해 노쇠 대상자에게 주민강사 운동교실, 단백질 보충 식품 제공, 노인성 질환 관리를 위한 방문 건강관리 등을 제공하고 있다.

경기 시흥시는 '주민참여 신체활동 활성화 및 건강아파트 만들기 사업'을 통해 목감 7000보 걷기 챌린지, 건강아파트 만들기, 어린이 체조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목감 7000보 걷기 챌린지' 행사에 참여한 경기 시흥시 주민들이 한데 모여 체조를 하고 있다. (질병청 제공)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현재까지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는 여러 건강지표로 확인되는데, 경남 남해군의 경우 3년 새 노인영양지수 균형부분에서 28.5% 포인트(p)가 늘고, 고혈압 11.8%p, 당뇨병 18%p가 줄어드는 성과를 얻었다. 경기 시흥시는 비만율 8.2%p가 줄고 걷기실천율은 13.5%p가 증가했다.

'건강아파트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기 시흥시 목감동 주민 정유진씨(54)는 "2020년부터 주민들과 동네 한바퀴를 돌고 어르신들은 아침에 라인댄스 수업을 듣거나 아이들과는 휴지 줍기 프로그램 같은 것들을 해오고 있다"며 "주민 모두 굉장히 만족하고 있고 다른 지역도 몰라서 못하는 거지 알게 되면 많이들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얼마 전엔 아이들과 휴지줍기 프로그램을 하는데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들이 예쁘다고 용돈도 주고 칭찬도 해주시더라"면서 "요즘 같은 삭막한 시대에 주민들과 소통하고 정을 나누게 돼 동네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했다. 정씨는 "질병대응센터에서 언제까지 지원을 해줄지 모르겠지만, 설령 지원을 안 해주더라도 주민들끼리 모여 계속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경기 시흥시는 2023년 국비 지원이 종료됐지만 걷기 참여자가 2022년 12월 80명에서 지난 7월 384명으로 4.8배 증가하고, 참여 아파트가 2곳에서 5곳으로 늘어나자 시흥시가 자체 예산으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질병청도 지자체가 건강문제 개선 및 해결을 위한 자생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건강격차가 심각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시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그 이후엔 자체사업으로 지속 추진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질병청 관계자는 "고령화로 만성질환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 질병 부담이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질병청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 여건을 고려한 원인 진단을 하고, 이에 따라 효과적인 프로그램이 운영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