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청년 줄고 연금 더 늦게 주고…'더 오래 老동'은 한국인 숙명

[정년연장이 온다] ①노인 3명 중 1명 빈곤…연금 수급연령만 늦추면 '재앙'
초고령화 韓 55~64세는 핵심 인적 자원…'더 늦게 은퇴' 사회적 합의 시급

편집자주 ...정부가 정년연장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수면 위로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국민연금 개혁과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고려할 때 정년연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라는 인식에 따른 결과일 것입니다. 다만, 정년연장에 앞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합니다. 특히 세대 간 갈등과 임금체계 개편, 노사 간 합의 등은 이해관계가 첨예해 합의가 요원합니다. 뉴스1은 사회적 합의를 해결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를 4편의 기획물에 담았습니다.

구직활동을 하는 어르신. /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박상휘 박혜연 이정후 기자 = 고령층의 은퇴 시기를 늦추는 '정년연장'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민연금 고갈 예측 시기가 불과 5년 만에 2055년으로 2년 앞당겨지면서 고령 인구 활용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노인 무임승차' 문제가 불거지며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정년연장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정년연장은 노년층의 '소득 공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이미 올해부터 연금 수급 연령이 62세에서 63세로 상향되면서 60세 정년과 3년간의 '소득 공백'이 생긴 상황이다. 2033년 65세로 늘어날 연금 수급 연령을 고려했을 때, 현재 정년 제도만으로는 가난한 노인이 늘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노년층의 노동 욕구도 무시할 수 없다. 은퇴 이후 불안정한 소득 탓에 고용 시장으로 나오는 측면도 있지만 많은 노년층이 '60세는 은퇴하기에 이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 상황에 비춰봤을 때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정년연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보인다.

실제로 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미래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보건복지 대응'에 따르면, 전국 만 20세부터 69세까지 6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정년 연장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83.4%로 나타났다.

한 고물상에서 폐지를 싣고 온 노인이 무게를 다는 모습. /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 늙어가는 대한민국…연금만으로 '노인 빈곤' 막기 어려워

정년연장의 논의 배경에는 노인빈곤율이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3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를 유지할 경우 2085년에도 노인 10명 중 3명은 '빈곤' 상태에 허덕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노후 대비가 부실한 고령층은 정년퇴직 이후에도 고용 시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노인복지법은 '65세 이상'부터 노인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2019년 기준 65~69세 고용률은 46.2%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노인 빈곤율과 고용률이 모두 높아 암울한 인생의 황혼기를 겪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연금 제도이지만 '덜 내고 더 받는' 연금 구조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연령마저도 2033년에는 65세까지 늦춰질 예정이다. 연금개혁안의 바탕에 보험료 인상과 의무가입상한연령 상향이 함께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무가입상한연령 상향은 필수적으로 '정년연장' 논의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가속화도 정년연장의 필요성에 힘을 보탠다. 우리나라는 2025년 65세 이상 인구가 20.6%를 기록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노동부는 지금과 같은 속도가 계속되면 2030년 인구 4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청년층과 중년층의 경제활동인구는 2025년부터 2030년까지 각각 73만4000명, 71만6000명 감소할 전망이다. 산업 곳곳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지속 불가능한 인구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임금체계 개편과 계속고용을 위한 사회적 논의에 나선 상태다. 65세 이상 고용률에 비해 55~64세 고용률(66.3%)은 대표적인 고령화 국가인 △일본(76.9%) △독일(71.8%)보다 낮아 해당 연령층을 핵심 인적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정순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18년부터 인구절벽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30년 뒤면 전체 인구의 40%가 노인인구다"라며 "우리나라 고령화가 너무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정년연장 논의를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시민이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 "나는 더 일하고 싶다"…정년연장 원하는 장년층

정년연장은 '일할 수 있는 연령'을 법적으로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정책이다. '일자리가 곧 복지'라는 말처럼 노동 능력이 있는 많은 고령층은 실제로 정년 연령인 60세가 넘어도 일하고자 하는 욕구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경제적 상황이 궁핍한 이유도 있지만 일하고자 하는 장년·노년층은 여전히 구직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장년층을 대상으로 일자리·노후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 김민자(60·여) 선임은 "상담하러 오는 분들의 70% 이상이 '나는 아직 젊고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고 전했다. 김 선임은 "우리 기관이 5060세대를 위한 기관인데도 불구하고 70대, 80대분들도 일자리를 찾기 위해 오신다"고 덧붙였다.

2년 전 고등학교 영양사로 근무했다가 정년퇴직한 한소영(가명·62·여)씨도 "일을 더 하고 싶었지만 정년 때문에 퇴직해야 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씨는 정년퇴직 후 시간을 보내다가 4개월 전부터 한 지방자치단체의 어르신돌봄 기간제 근로자로 재취업해 일하고 있다.

그는 "일을 한다는 것은 삶의 일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지금은 1년 계약이지만 사업이 계속 진행되고 채용공고가 나온다면 또 지원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2021년 11월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시행한 '2021년도 사회보장 인식조사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찾아볼 수 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국민 2000명과 전문가 100명은 노후를 위해 추진해야 하는 정책으로 '정년연장 등 고용 확대 정책'을 꼽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18년까지 국민들은 노후 대비 희망 지원 정책으로 '소득지원', '퇴직 후 취업 또는 창업 지원'을 원했으나 2020년과 2021년에는 '정년연장', '계속고용 및 고용기회 확대'가 필요하다고 가장 많이 응답했다.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앞에서 제32회 세계노인의 날을 맞아 열린 '일하는 노인'에 대한 고용안전망 요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노인 일자리 사업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2022.10.1/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 단순히 풀기 어려운 '정년연장' 문제…사회적 논의 서둘러야

일하고 싶어 하는 장년·노년층이 늘어날수록 정년연장의 기준 연령을 얼마나 높여야 할지도 쟁점 사안이다. 경영계는 인건비 부담을 호소하고 젊은 층은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년연장 논의의 기본 틀이 연금 수령 연령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연금의 재정 건전성을 위해 의무가입상한연령의 상향을 피할 수 없는데 이는 곧 정년연장이 필요하다는 논의로 확장된다는 이유에서다.

해외 주요 국가들의 공적연금 의무가입상한연령도 수급개시연령과 연동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영국 등은 수급개시연령 직전까지 공적연금을 의무로 가입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독일은 법적 정년이 65세이면서 연금 수급 연령도 65세로 같다.

전문가들은 민간 고용시장에서 정년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논의를 우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부에게라도 정년연장 혜택이 돌아간다면 연금 수급 전까지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년연장 논의는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개혁과 함께 이뤄져야한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의 연공서열제를 전제로 논의하기보다 성과급제, 직무급제 등 임금체계 개편과 동시에 정년연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 교수는 "정년연장 논의에서 더 나아가 신체적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은퇴를 할 수 있도록 정년 철폐까지 고민해야 한다"며 "(임금체계 개편 시) 기존에 혜택을 받았던 사람들과 비교해 누군가는 손해를 보겠지만 물꼬를 트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혜연·이정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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