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한달]집단 트라우마, 국민 정신건강 '빨간불'
현장 의료진 "정신적으로 힘들면서도 도움 요청 적어" 우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재난 사고 이후에 증가폭 커져
전문가들, 의학적·사회적 대책 모색하는 '외상후 성장' 제안
- 음상준 기자
(서울=뉴스1) 음상준 기자 = 이스라엘 심리치료 민간구호기관인 이스라에이드(Isra AID) 소속 전문가들이 지난 11일 세월호 실종자 가족 트라우마 심리 상담을 지원하기 위해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위치한 심리상담 지원센터에 도착했다./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figure>정신과 전문의인 노만희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장은 단원고 학생들과 주민들의 정신과 치료에 매진하는 동료들을 격려하기 위해 지난 12일 안산트라우마센터를 방문했다.
노 회장은 현장 동료들로부터 걱정스러운 얘기를 들었다. 분명 의학적인 치료와 상담이 필요한데도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이다.
생존자와 주민들은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은 상황에서 주의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심각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노 회장은 "분명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많고 현장엔 충분한 인프라를 갖췄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를 괴로워하고 미안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언론을 통해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무겁기만 하다. 수많은 행사가 취소됐고 술자리에선 건배구호가 사라졌다.
광명에 거주하는 김동현(34)씨는 "세월호 참사를 방송으로 지켜보며 화가 났고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며 "오락가락하는 정부 대처에 나도 모르게 울화통이 터졌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 전문가들이 집단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트라우마)'을 경고하고 나섰다.
대학교수들 학술단체인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14일 세월호 사고에 지속 가능한 트라우마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학회는 "심각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겪고 있는 유가족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의 걱정과 아픔은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보상 체계를 가진 조직이 구성되고 유지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단 트라우마가 우려되는 이유는 자살대국이라는 국내 사정과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단연 1위다. 최근 20년 새 자살률이 3배 가량 증가했다.
OECD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는 28.4명으로 OECD전체 평균 11.3명의 2배를 훌쩍 넘는다.
자살은 취약계층인 노인과 청소년을 더 위협한다.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1위를 차지한다. 청소년 사망원인 1위 역시 자살이다.
신경정신의학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9·11 사태 이후 '뉴욕 건강 및 정신위생국'이 진행한 연구 결과에서는 사건에 노출된 성인의 20% 정도에서 PTSD가 발생했다.
통상적인 발병률의 4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구조요원 등도 PTSD 위험률이 높았다. 미국 남부의 경우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 사건 이후 지역 자살률이 50% 가까이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의 자살 기도 소식이 언론의 보도자제 속에서도 이미 몇건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집단 트라우마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기적이고 행정력이 뒷받침되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는 "지금 상황은 충분히 걱정된다. 겨우 줄어든 자살률이 다시 증가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슬픔에만 빠져있을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를 더 성숙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9·11 사태를 겪은 미국에서는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외상후 성장'이라고 부르면서 의학적·사회적으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했다. 한국에서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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