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도 쉬지 못하는 이들…"인정 못 받는 노동의 가치에 상처"

추석 연휴 코레일 자회사 철도노동자 동행 취재
"1년차와 10년차 임금 동일…노동 강도 최상"

추선 연휴인 15일 오전 서울역 발권창구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코레일네트웍스 직원들. 2024.09.16/뉴스1 ⓒ 뉴스1 김민수 기자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처음엔 명절에 쉬지 못하니까 가족도 안타까워했는데 지금은 존중해 주시죠"

30대 초반이자 열차 승무원 5년 차인 김명현 씨(가명)는 추석 때 쉰 경우가 극히 드물지만 "어릴 적부터 이 일을 진심으로 하고 싶었다"며 눈을 반짝였다.

지난 15일 서대전역에서 용산역 방면으로 향하는 KTX 열차에서 만난 그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승무원이다. 그는 시종일관 좌석을 꼼꼼히 확인하고 때로는 민원이 들어오면 분주히 움직여야 했다. 김 씨는 "승무원 일을 최대한 오래하고 싶다"면서도 "처우 문제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를 자주 봐와서 씁쓸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철도노동자는 명절에 쉬지 못하는 직군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가 흔히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승무원이나 역무원 등은 자회사 직원인 경우가 많다. 명절을 맞아 자회사 소속 철도노동자들은 '애정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지만, 자회사 무기계약직에 대한 차별과 열악한 처우 때문에 상처받는다'고 입을 모아 토로한다.

◇'험지' 서울역…"애정 가지고 시작했지만 노동 강도엔 한숨만"

경부선과 호남선, 중앙선 등 모두 7개 노선(경부·동해·경전·호남·전라·강릉·중앙선) 열차가 오가는 서울역은 하루 이용객만 약 9만 7000명에 달한다.

지난 15일 오전에 방문한 서울역 발매 창구 앞은 귀성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투명한 창 안에는 역무원들이 밀려오는 고객들을 감당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40대 초반 역무원 이강록 씨(가명)는 업무 경력만 10년 이상인 베테랑이다. 이 씨는 철도 관련 전공을 했을 만큼 자기 일을 오랫동안 동경해 오다 결국 꿈을 이뤘다. 자녀 2명을 가끔 일터에 데리고 오곤 한다는 이 씨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아빠가 하는 일을 보면 그저 신기해한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 씨와 같은 코레일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 소속 광역철도 역무원은 신입과 10년 차의 임금이 동일하다. 코레일네트웍스의 올해 3분기 공개채용 공고에 따르면 역무원 등의 연봉은 2470만 원이다.

구체적으로 승차권 발매 업무를 하는 A 씨의 8월 지급명세서를 살펴보면 A 씨가 받는 월급은 세전 206만 5140원이다. 여기에는 직무수당(1만원), 원천세(4400원), 식대(14만원) 등이 포함돼 있다. 27만 1330원을 공제하면 실지급액은 179만 3810원에 불과하다. 올해 최저임금 9860원을 월 급여로 환산하면 206만 740원이다.

이에 반해 업무강도는 최상이다. 이 씨는 "1시간에 기차표 70~80매를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며 "명절에 쉬어본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인 발권기가 있더라도 결국 노인분이나, 표를 어떻게든 구하고 싶어 하는 시민 등은 역 창구를 직접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외국인을 위한 무인 발권기가 있지만 해외 카드 결제가 되지 않으면서 외국인 창구로 사람이 자주 몰린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외국인 승객을 응대하기 위한 인력은 충원되지 않았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그는 "태블릿 PC 번역기로 겨우 소통하면서 업무를 보고 있기 때문에 업무 피로도가 상당하다"며 "그럼에도 이와 관련한 인력 충원이나 업무 수당이 나오진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5일 오후 코레일네트웍스 충청권 지역관제센터에서 직원들 업무를 보고 있다. 사무실 한편에는 추석 연휴를 맞아 인근 시장에서 구매한 전과 떡 등이 마련돼 있다. 2024.09.16/뉴스1ⓒ 뉴스1 김민수 기자

◇'베테랑' 모여있는 고객센터…"처우 좀 나아졌으면"

대전역 건너편에 자리한 코레일네트웍스 충청권 지역관제센터. 이곳에선 KTX역을 포함한 충청권 주차장을 관리하는 곳으로 직원 8명이 오전·오후·야간으로 나눠 밤 10시까지 일 한다.

주차장 업무 대부분이 '무인화'됐더라도 기계가 고장 나거나 사고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관제센터로 연락이 올 수밖에 없다. 이들 또한 명절 때 쉽게 쉴 수 없는 직군 중 하나다.

10년 이상 관제센터 업무를 한 B 씨는 "보통 근무에 통상 3인이 투입되며, 20여개 되는 주차장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인원이 빠져 2인이 한 조로 근무하면 업무 과중은 불 보듯 뻔할 수밖에 없다. 예비 인력이 없다 보니 쉬는 것도 동료에게 미안한 지경이다. 악성 민원을 견뎌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대전조차장역의 '철도고객센터' 상담사들 또한 근무 시간이 운 좋게 맞아야만 쉴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백 모 씨는 20여년의 경력을 지닌 베테랑이다. 언제 어떤 민원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수도권 철도 등에 대한 지식은 물론 다양한 정보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백 씨의 책상에는 각종 두꺼운 매뉴얼과 철도 노선도 등이 빼곡히 붙어있었다.

노조에 따르면 철도고객센터 상담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13년. 그러나 경력과 무관하게 이들은 동일하게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인력 충원 또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백 씨는 "헤드셋을 오래 끼다 보니 귀가 안 좋아진 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버텨내며 밥벌이를 해왔다"면서 자신의 노동이 '단순 업무'로 취급받는 현실이 가장 안타깝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대전조차장역에 자리한 철도고객센터 상담사의 책상. 2024.09.16/뉴스1 ⓒ 뉴스1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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