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발언에 불붙은 논란…'통상임금' 뭐길래?

산정범위 놓고 노동계·경영계, 행정부·사법부 얽혀
노동계 "朴대통령, 대단히 부적절하고 위험한 발상"

7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통상임금 산정 판결 위협하는 사용자단체와 고용노동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양성윤 민주노총 부위원장(가운데)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들은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하는 등의 대법원 판결에 사용자 단체들의 공세가 이어지는 것을 고용노동부가 부추기고 있다"고 규탄했다. 2013.5.7/뉴스1 © News1 양동욱 기자

</figure>노사갈등의 '불씨'를 품은 통상임금 문제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으로 활활 타오를 조짐이다. 노동계와 경영계, 행정부와 사법부 등이 얽힌 통상임금 문제에 대통령의 발언이 더해지면서 논란이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8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미 상공회의소 주최로 워싱턴에서 열린 CEO라운드테이블 및 오찬에서 다니엘 에커슨 GM회장과 '통상임금'을 두고 대화를 나눴다.

에커슨 회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는 엔저 현상과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전제로 80억달러 규모의 한국 투자 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몇년 간 힘들었지만 (이 두 문제가 해결된다면)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에 박 대통령은 "그런 문제는 미국 자동차회사인 GM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가 겪고 있는 문제이니까 꼭 풀어나가겠다"고 답했다.

한국지엠노조는 법원에 통상임금 반환 소송을 내 현재 대법원 판결만 남겨놓고 있다. 앞선 1·2심에서는 모두 승소했다.

이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노동계는 "대단히 부적절하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9일(한국시간) 논평을 통해 "GM대우를 비롯한 60여개 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이유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으로 그동안 사용자들이 부당하게 지급하지 않은 임금을 제대로 돌려받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GM 회장의 문제제기에 공감한 것이라면 사법부의 판단을 거스르겠다는 것으로 매우 위험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진의는 더 파악해 봐야 하겠지만 대통령의 발언이 재계와 사법부 및 행정부에 잘못된 신호로 전달돼 장시간 노동과 왜곡된 임금체계를 고착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노동계의 저항은 물론 역사적 책임도 면치 못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금속노조도 10일 "제 나라 노동자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GM이 그간 부당한 이득을 취해 왔는데도 그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조차 없고 오히려 한국 노동자들이 문제라는 식의 대통령 발언은 매우 우려스럽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무시하고 나아가 대한민국 사법부 판단을 거스르겠다는 것인가"란 내용의 논평을 냈다.

박 대통령과 에커슨 GM 회장,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 노동계가 언급한 '통상임금'은 무엇이며 왜 논란이 된 걸까.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따르면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에게 정기적·일률적으로 소정근로시간 또는 총근로시간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해진 시간급금액·일급금액·주급금액 또는 도급금액을 말한다.

통상임금이 중요한 이유는 휴업수당,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해고예고수당 등을 지급할 때 금액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통상임금이 올라가면 각종 수당도 올라간다. 근로자는 더 많은 수입이 생겨 웃지만 사용자는 비용이 늘어 울상 짓게 된다.

통상임금에는 기본급은 물론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고정급임금이 포함된다. 금융수당, 반장수당, 물가수당, 면허수당, 위험수당, 생산장려수당, 능률수당 등 일정한 금액이 정기적으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이나 수당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육아수당, 자녀학자보조금 등도 일정한 기준을 만족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므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

반면 근로자 개개인의 업무능력, 성과에 따라 금액이 다르게 지급되는 업적성과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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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경제5단체가 경제현안 관련 긴급회동을 갖고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중소기업중앙회 백양현 상무, 대한상공회의소 전수봉 상무, 한국경영자총협회 이동응 전무, 전국경제인연합회 배상근 상무, 한국무역협회 김치중 상무./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figure>최근 노사가 다투고 있는 통상임금 문제의 핵심은 정기상여금이다.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되느냐, 아니냐를 두고 법원과 고용노동부가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혼란이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는다. 지난해 9월 개정된 고용노동부 예규 통상임금산정지침의 판단기준 예시를 보면 정기상여금, 체력단련비 등은 통상임금 산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나와있다.

반면 대법원은 이보다 앞선 지난해 3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6개월을 넘겨 일한 근로자에게 근속연수에 따라 미리 비율을 정해두고 이에 따라 산정한 금액을 분기별로 지급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자 노동계는 법원으로 달려갔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삼성중공업, 한국지엠 등 62개 노조가 통상임금을 놓고 소송을 진행중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7일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등과 함께 통상임금 재산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고용노동부는 기존의 잘못된 통상임금 산정기준을 바로잡아 이제라도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계 입장에서는 큰 일 날 소리다. 만약 법원이 노조의 손을 들어주면 법에 따라 사용자는 통상임금을 다시 산정해 그동안 잘못 지급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의 3년치를 소급 지급해야 한다. 사용자측으로서는 엄청난 부담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29일 통상임금 산정범위 확대 문제와 관련한 분석 보고서에서 "통상임금 산정 범위에 고정상여금을 포함하면 기업들은 한번에 총 38조5509억원을 부담해야 한다"며 "이후로도 매년 약 8조663억원의 추가비용 부담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도 이를 우려하고 있다. 법원의 판단은 개별 사건에 적용되지만 정부의 행정해석이 바뀌면 이는 모든 기업에 바로 적용된다.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한편 박 대통령이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언급한 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앞으로 발생하는 통상임금 문제는 법 개정이나 시행령 개정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이미 지급된 퇴직금과 보너스 문제로 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는 법을 새로 개정해도 해결이 안 된다"며 "노사정위원회 같은 곳에서 토론을 통해 합의로 풀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hyu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