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 '운전면허 유지 괜찮나'…적성검사 무용론 논란 가열
1년 전 치매 진단 받고 약 3개월 복용이 끝…검사 의무 연령대 하한 목소리도
전문가 "수시 적성 검사 강화하고 치매 운전 가이드라인 논의해야"
- 김예원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2024년 마지막 날 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가해 운전자가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고령 운전자에 대한 적성검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참사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고령자의 치매 의무 검사 나이대를 낮추고 치매 질환자 등 취약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수시 적성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치매 중증도 등에 따라 운전 여부를 명확히 구분해 주는 의료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치매 증상은 개인차가 심해 일률적으로 제한할 경우 이동권 제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3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 31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운전자 김 모 씨(74)를 입건해 수사 중이다. 김 씨는 오후 3시53분쯤 서울 목동 양동중학교 방면에서 버스를 앞질러 가다가 목동 깨비시장으로 돌진해 상인과 행인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해당 사고로 4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김 씨가 치매 증상을 보인 건 약 3년 전부터다. 경찰이 가족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 씨는 2022년 2월 서울 양천구 관내 보건소에서 치매 치료를 권고받았다. 2023년 11월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고 3개월간 약도 먹었다. 하지만 추가 처방 및 치료는 이뤄지지 않았다.
김 씨는 사고 당시 1종 보통면허 소지자였다. 면허는 2022년 9월 김 씨가 적성검사를 치른 후 갱신됐으며, 그가 치매 진단을 받은 2023년 11월 이후 지금까지 유지됐다. 적성 검사 당시 김 씨의 나이는 만 73세여서 치매인지선별검사(CIST)를 받지 않아도 면허 갱신이 가능했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는 65세 이상~75세 미만은 5년마다, 75세 이상은 3년마다 적성 검사를 받아야 면허 갱신이 가능하다. 75세 이상 고령자만 적성 검사 때 CIST를 필수로 받아야 한다.
그 이하 연령대는 본인 또는 주위 신고가 없다면 치매 여부를 유관기관이 파악하기 어렵다. 치매 판정 사실이 알려져도 운전이 가능하다는 전문의 소견을 받아오거나 운전적성판정위원회 검증 등을 거치면 운전을 할 수 있다.
김 씨가 앓고 있는 치매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은 김 씨가 사고 당시 일부 장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곤 진술엔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김 씨에 대한 별도의 정신 감정은 의뢰하지 않되 사고 차량을 압수하고 면허 취소 등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김 씨가 70대 치매 노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령 운전자 규제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일각에선 치매 의무 검사 연령대를 낮추거나 택시·화물 고령 운전자 자격검사처럼 강화된 요건을 고령자 전반에 확대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현재 시행되는 수시 적성 검사를 좀 더 체계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행법상 운전자에게 안전 운전에 방해가 되는 후천적 신체장애 등이 발생하면 이들은 한국도로교통공단이 실시하는 수시적성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검사 요건을 좀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치매의 경우 수시 적성 검사 대상 질환이지만, 현재 6개월 이상 입원 치료를 받은 경우에만 해당 검사를 거쳐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검사 기준을 완화하거나 치매 운전자 관련 가이드라인을 배포해 개별 의료기관 및 센터가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도 방법 중 하나로 언급된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화로 인한 인지 능력 차이 등은 개인차가 매우 크고, 도농 간 교통 인프라 격차 등의 문제도 있어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며 "의료당국과 긴밀히 협의해 치매 등을 앓는 고령 운전자가 운전할 수 있는 조건 등을 명확히 하는 등 시스템을 촘촘히 정비할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획일적 규제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선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고령 운전자 전체를 검사 할 인프라도 당장 구축돼 있지 않을뿐더러 자칫 노인 이동권 제한 문제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3년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는 454만7426명으로, 5년 전(333만 7165명) 대비 42.3% 늘었다. 통상 초고령 운전자로 분류되는 75세 이상 운전자는 2023년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런 추이면 2040년에 고령 운전자는 1300만 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2020년 한국교통연구원이 발간한 '고령자 운전면허제도 개선 및 모빌리티 제공 방안'에 따르면 도심에 거주하는 고령자와 달리 농촌 거주 고령자는 버스 노선 부족 등 대중교통 서비스의 미비, 지하철 무료 이용 등 복지 서비스 부족으로 반납 등으로 운전면허가 없을 시 큰 불편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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