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범 이xx" "내란수괴"…정치 현수막 난립에 "아이보기 민망" 한숨
올해 불법 현수막만 7만개…서울시 "민원 많아 공문까지 발송"
시민들 "길 가면서도 봐야 하나"…대법원 "정당 스스로 바꿔야"
- 장시온 기자
(서울=뉴스1) 장시온 기자 =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 들어서면서 선거철에 국한됐던 정당들의 '현수막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현수막이 논란에 휩싸이면서 양 진영의 정치적 세 대결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행법상 정당 현수막은 일반 현수막과 달리 사전 신고 없이 설치할 수 있어 현수막 난립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민들은 "뉴스만 봐도 피곤한데 길거리에서까지 저런 걸 봐야 하냐"고 한숨을 쉬었다.
23일 경기 안양의 한 사거리. 한 극우 정당이 내건 "오라! 광화문으로! 가자! 탄핵 저지!"라고 적힌 현수막이 갈가리 찢긴 채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24일 경기 성남 수정구의 한 사거리 횡단보도 바로 위에는 '잡범 ○○○을 감옥으로~'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를 본 한 시민이 "철거해달라"고 민원을 넣었지만 정당에서 건 현수막은 손을 댈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12·3 계엄 사태 이후 정당들이 내건 현수막을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늘고 있다. 안앙시 관계자는 "요새 시국이 시국인지라 정당 현수막이 시내 곳곳에 많이 늘었다"며 "양쪽 지지자 분들이 집중적으로 민원을 넣는다"고 했다.
특히 탄핵 소추가 이뤄지는 국회와 탄핵 심판 절차가 진행되는 헌법재판소가 있는 서울에서 현수막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서울시는 이달 민원이 잇따르자 지난 11일 "불법 현수막을 정비해달라"는 공문까지 보냈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부분 민원이 정당들이 건 현수막을 치워달라는 내용"이라고 했다.
불법 현수막까지 매년 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불법 현수막은 7만 3053건으로 4만 6419건이던 2020년보다 60% 가까이 늘었다.
현수막은 정당들의 세 대결 수단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앞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이재명은 안 됩니다' 문구의 현수막을 게시할 수 없다고 했다가 "이중잣대"라는 여당 비판에 번복한 바 있다. 이후 양측의 일부 지지자들은 "강남을 우리 현수막으로 뒤엎자" "500장을 설치하자"며 현수막 시안 제작에 나섰다.
시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국회 인근의 증권사에 다니는 정 모 씨(25)는 "출근길 낯 뜨거운 문구의 현수막으로 도배된 거리를 보면 기분을 망친다"고 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김 모 씨(25)도 "조용한 주택가에서까지 '파면' '탄핵' 같은 단어를 보면 불쾌하다"고 했다.
7살 딸을 둔 장 모 씨(37)는 "딸이 현수막을 보면서 '저게 무슨 뜻이야'라고 물을 때마다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12일 국민신문고에는 "주요 건널목마다 걸린 자극적이고 혐오스러운 정치 현수막을 제거해 달라"며 "볼 때마다 정신이 피폐해지고 아이들 정서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공개제안이 올라오기도 했다.
정당 현수막은 일반 현수막보다 규제가 느슨하다.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현수막을 걸기 위해선 구청에 사전 신고를 하게 돼 있다. 하지만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현수막은 구청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고 금지·제한 규정도 적용받지 않는다.
지자체들은 조례를 통해 현수막 난립을 막으려 했지만 대법원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인천시와 광주시, 울산시 등은 지난해 조례를 바꿔 정당 현수막을 정해진 게시대에만 걸 수 있게 하고 선정적인 문구를 쓰지 않게 하려 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7월 "상위법에 어긋난다"며 해당 조례를 무효 판결했다.
대법원은 "정당 현수막에 대한 규율을 통해 정당 활동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성은 인정된다"면서도 "원칙적으로 국민의 대표인 입법자가 스스로 규정할 사항"이라고 했다. 현수막을 거는 주체인 정당에 공을 넘긴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당 현수막은 금지 장소와 설치 규격만 지키면 15일 동안 건드릴 수 없다"며 "불법 현수막 단속을 위해 '시·구 합동 기동정비반'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zionwk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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