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상황 안타까워도"…얼어붙은 마음 녹이는 청아한 종소리[르포]
다양한 성별·연령대 시민들 기부 "이럴 때일수록 기부해야"
구세군 "지난해와 큰 차이 없어"...26일 기준 약 20억원 모금
- 유수연 기자
"나라 상황은 안타까워도 시민들의 마음은 따듯해요."
(서울=뉴스1) 유수연 기자 = 26일 오후 서울 용산역광장. 시민들이 바쁘게 오가는 가운데 청아한 종소리가 울렸다. 영상 1도의 추운 날씨에도 구세군 봉사활동을 하는 이 모 씨(여·65)는 시민들이 자선냄비에 현금을 넣을 때마다 "고맙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씨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시민들의 기부가 위축되진 않았냐는 질문에 "그런 게 없지 않아 있을 것"이라며 "젊은 사람들이 힘들어서 보는 사람으로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작년에도 (봉사활동을) 하고 자리가 나면 자주 한다"며 "어르신이든 학생이든 시민들은 대중없이 자선냄비에 기부한다. 시민들의 마음이 따듯하다"고 덧붙였다.
30분 동안 용산역 구세군 자선냄비를 지켜본 결과 총 6명의 시민이 현금을 기부했다. 만 원 이상 큰 금액을 쾌척한 시민은 없었지만, 지갑 속 잔돈을 자선냄비에 십시일반 기부했다. 20대 연인부터 노신사까지 연령대와 성별도 다양했다. 한 시민은 "많은 금액을 기부하지 않아 부끄럽다"며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하기도 했다.
천 원권 몇 장을 자선냄비 안에 넣은 A 씨(여·27)는 "연말연시 하면 나눔이 떠오르는데 올해는 그런 느낌이 안 난다"며 "잔돈 몇 푼 넣는 거뿐이지만, 이렇게라도 따듯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박 모 씨(남·72)는 기차 시간에 맞춰 손자들과 용산역으로 달려가면서도 자선냄비에 기부했다. 박 씨는 "손주들도 이런 걸 보고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 기부했다"며 "나라 상황 때문에 마음이 안 좋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부해야 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올해부터 소정의 활동비를 받으며 구세군 봉사자로 일하고 있다는 서 모 씨(남·71)는 "한겨울엔 패딩으로도 모자라 당연히 내복을 입어야 한다"며 추위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기부가) 덜 되면 안 되는데..."라며 걱정을 드러냈다.
서 씨 같은 노인 봉사자 중 일부(전체 자원봉사자의 0.2%)는 취업 지원센터를 통해 추천받아 선발한다. 한 구세군 노인 봉사자는 "나이가 들고 혼자 살다 보니 외롭고 쓸쓸한 날이 많았다"며 "자선냄비 봉사에 나서면서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를 보고 사람 사는 게 이런 거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구세군에 따르면 올해 자선냄비 거리 모금액 현황은 지난 24일 기준 약 20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큰 차이가 없다. 지난 자선냄비 거리 모금액은 △2021년 21억 1000만원 △2022년 22억 7000만원 △2023년 21억 6000만원이다.
구세군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2020년부터 자선냄비 거리 모금액은 꾸준히 증가했다"며 "지난해엔 상승세를 이어가진 못했지만, 연말에 많은 분들이 모아주시는 정성을 나누기엔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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