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9명 숨졌지만 아무도 몰랐다"…허수아비 마을의 비극[외딴 죽음]①
'농촌' 전국 82개 군 중 44% 정신과 병의원 '0개'…웅크린 농가
'고립→우울→자살' 끊을 의료 기반 부족…전공의 사직 후 심화
- 남해인 기자, 김민수 기자, 홍유진 기자
"자살은 무슨… 여기 좁아서 소문도 금방 나는데 그런 사람 한 명도 없었어."
(서울·충남·충북·강원) 남해인 김민수 홍유진 기자 = 지난달 5일 충청남도 한 농촌의 농약 방에서 만난 60대 남성 A 씨의 말이다. A 씨는 이웃 주민 서너 명과 찌개 요리를 나눠 먹다가 잠시 멈추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올해 자살로 돌아가신 분이 여러 명인데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사람 단 한 명도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옆에 있던 이장 B 씨도 고개를 저었다. "이장인 나도 못 들었는데 다른 곳과 착각한 것 아닌가."
그러나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진 이 지역 주민은 올해만 19명. '군'으로 분류되는 이 지역의 전체 인구는 약 5만 명으로 서울 강남 대치동 인구의 3분의 2에 불과하다. 오후 8시쯤 지역 번화가를 지나 민가로 들어서자 차 상향등을 켜지 않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도로가 이어졌다. 황금 들녘의 이면에는 고립·방치된 농가가 숨죽인 채 웅크리고 있다.
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3년도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도시)에 거주하는 노인의 자살 생각 비율이 읍·면(농어촌)에 거주하는 노인보다 낮았다. 조사 대상인 65세 이상 1만 78명 중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104명을 설문한 결과, 읍면 거주자의 자살생각률은 동의 1.6배에 이르렀다.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로는 '신체적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나 불편'(응답률 54.5%)이 가장 높았고 그다음은 '외로움'(28%)이었다. 이 두 가지 이유는 서로 분리되지 않고 연결돼 있다. 질병으로 고통받거나 불편해 외롭고, 외로워서 마음의 통증은 악화한다.
지난 10월 1일 오후 2시쯤 충북 음성군에서 만난 이금자 씨(가명·90)는 기자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금자 씨는 손등에 뼈 자국이 선명할 정도로 왜소하고 마른 체형이었다. 혼자 사는 그는 올해 초 다리와 허리를 다쳐 석 달 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그때 찾아오는 이 없어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외롭거나 우울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금자 씨는 "우울, 그게 뭐래? 그냥 사는 거지"라고 답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의 거주지 간 거리는 약 1㎞다. 대부분 모서리가 녹슨 1층짜리 철제 기와집이다. 10여 분을 걸어야 옆집으로 갈 수 있지만 금자 씨처럼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겐 '머나먼 여정'이다. 대낮 거리에는 사람 한 명 없었고 새소리만 들렸다.
지난 9월 31일 오후 3시 충북 옥천군에 들어서자 논과 밭이 널찍하게 펼쳐졌다. 논밭에 홀로 서 있는 허수아비가 가을바람에 흔들렸다. 이곳 마을 회관에서 만난 김순희 씨(가명·72)는 "일주일에 한 번은커녕 한 달에 한 번 겨우 사람을 본다"고 했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식사나 대화하며 나누는 정서적 교감의 만남을 의미하지 않았다. "시내에서 장을 보려고 나갈 때 버스정류장에서 사람 마주치면, 그게 보는 것"이다. 순희 씨는 "농사일을 하는 사람은 원래 다 그렇다"며 "외로움을 달랠 방법을 모른다"고 덧붙였다.
정부 부처나 산하기관의 통계 및 보고서를 보면 자살 원인 1위는 대부분 정신건강 문제다. 자살하는 사람 10명 중 8명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농촌에서 자해하거나 농약을 마신 환자들은 대학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되기는 한다. 문제는 병상이 부족해 '뺑뺑이'를 한다는 점이다. 의·정 갈등에 따른 전공의 집단사직 후 병상 부족이 심각해졌다는 게 현장의 우려다.
지난 9월 30일 오후 8시쯤 충남의 한 대학 병원 응급실 앞에서 만난 15년 차 구급대원 C 씨는 "요즘 (농촌에서) 약물 자살 시도가 많지만 의료 파업 이후 베드(병상)가 항상 없다고 한다. 의사가 없어서 그런 건지, 정말 없는 건지 모르겠다"며 "병상 찾으러 대전에서 전북 익산까지도 갈 정도"라고 덧붙였다. 대전 주요 대학병원에서 75㎞ 떨어진 전북 익산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까지는 차로 최소 1시간 10분이 걸려 '골든타임'(인명을 구할 수 있는 시기)을 놓칠 수 있다.
응급실에서 자해 외상을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병의원으로 환자를 의무적으로 연결하는 사후 관리 시스템은 부실하다. 자살 시도자가 정신건강 외래 진료를 하지 않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오면 외상 치료만 하고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뉴스1이 농촌으로 분류되는 전국 82개 '군'을 자체 조사한 결과 응급실 운영과 정신건강 외래 진료를 모두 하는 의료기관 수는 9곳에 불과했다. 그중 7곳이 전남에 몰려있었고, 경북과 경남에 1곳씩 있을 뿐이었다.
환자의 극단 선택 시도 후 대응해야 할 종합병원 같은 대형 인프라만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환자가 자살 시도에 이르지 않도록 정신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병의원도 농촌은 모자란다.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상수에 따라 의원(30병상 미만), 병원(30병상 이상 100병상 미만), 종합병원(100병상 이상 300병상 이하에 7개 진료 과목을 필수 운영)으로 구분된다.
뉴스1이 올해 10월 '네이버 지도'에 등록된 지역별 의료 기관을 조사한 결과 정신건강의학 병의원을 비롯해 정신건강 외래를 하는 종합병원이 한 곳도 없는 군은 전국 82곳 중 36곳(약 44%)에 달했다. 구체적으로 △증평·단양·음성(이상 충북) △청양·금산·태안(이상 충남) △횡성·영월·정선·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양양(이상 강원) △진안·무주·장수·임실(이상 전북) △곡성·완도·신안·영암·무안(이상 전남) △고성·남해·하동·산청·의령·합천(이상 경남) △영양·고령·청송·예천·봉화·울릉(이상 경남)이었다.
의료 기관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살률이 높아진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예방의 차원에서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고립→ 방치→ 정신건강 문제→자살 시도→병원 이송→사망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최선의 예방책은 정신건강 진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농촌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주민들은 정신건강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거부 반응부터 보인다는 점이다. 일부 농촌은 가족 같은 분위기가 남아 고립에서 벗어나 있지만 '남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웃 간 밀착해 주민들이 진료를 주저하고 있다. '낙인'이 찍힐까 봐 '마음의 병'을 숨기려 한다.
지난 10월 31일 강원 평창군 봉화면에서 만난 자살 유족 안 모 씨(68·여)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약을 먹으면 무력감에 빠질 것 같았다"며 "이 동네에선 정신과 병원에 대해선 인식이 아무래도 그렇다(부정적이다)"고 했다. 자살 유족은 극단 선택으로 숨진 사람의 가족으로 자살률이 일반인의 8배 이상이다.
충북의 한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D 씨는 "일부 지역은 학연과 지연이 상당히 강하고, 소문에 민감해 정신과 치료를 먼저 받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며 "우리 군에만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 있는 자살 고위험군이 200명 이상 등록돼 있지만 서로 숨기고, 모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hi_na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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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흔 살 할머니 이금자(가명) 씨는 올해 초 다리와 허리를 다쳐 석 달 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그때 만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우울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금자 씨는 "우울? 그런 거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기자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뉴스1은 지난 두 달간 농촌에 거주하는 자살 위험군 18명과 자살 유족 7명, 주민 및 복지센터 관계자 20여 명 등 50명가량을 만나 자살 실태를 심층 취재했다. 전국 정신건강 병·의원 1190곳 분포를 직접 분석한 결과 의사의 조력을 받기 쉽지 않은 농촌의 현실도 확인했다. 생명존중 탐사 기획 '외딴 죽음'을 통해 금자 씨처럼 적막감에 둘러싸인 '농촌 사람들'의 자살 예방 방안을 모색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