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다림의 시간"…교회·사찰·성당 가득 채운 간절한 기도
여의도순복음교회·조계사·명동성당, 수능 기도 행렬
기도하다 눈물 쏟는 학부모들…"차분하게 후회 없길"
- 정윤미 기자, 김예원 기자, 김종훈 기자
(서울=뉴스1) 정윤미 김예원 김종훈 기자 = 2025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당일인 14일 수험생만큼이나 간절한 이들이 있다. 수험생 가족이다. 부모들은 자녀보다 먼저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오전 8시쯤 학교 앞까지 데려다 준 후 서둘러 종교시설로 향했다. 수능 시간표에 맞춰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다.
이날 오전 8시 40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 2층 대성전 안. 1교시 국어 시험 시작과 동시에 간절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족들은 각자 수험생 자녀 이름이 붙은 좌석에서 푸석한 얼굴로 우렁차게 기도문을 외웠다. 무대 앞 진행자의 마이크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좁은 선반 위에는 각 수험생 이름과 함께 '지원 분야'가 적혀있는 한 뼘 크기의 '카드'가 눈에 띈다. 양옆에는 휴지, 성경책, 물병 등이 올려져 있다. 안경 사이로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면서도 쉬지 않고 입을 움직이는 백발의 할머니, 양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아버지까지 1교시 시작 30분이 지났지만 기도 소리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
오전 9시 10분 대성전을 나서는 문입승(49) 씨 부부는 미대를 준비하는 3수생 딸을 시험장에 보내고 집에 가는 길 잠시 이곳에 들렀다. 문 씨는 "그동안 준비를 많이 했으니까 후회 하지 않게 시험 잘 봤으면 좋겠다"며 "이제 집에 가서 할 일 하면서 차분하게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시간 서울 중구 조계사는 '수능 대박' '합격 기원'이 적힌 무지개색 연등들이 수험생 가족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한쪽에는 합격 부적이 새겨진 양초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대웅전 안팎에서는 합장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재수생 손자를 둔 허은순 씨(79)는 오늘 아침 7시부터 기도 중이다. 허 씨는 마치 본인이 수험생인 것처럼 "중간에 (문제 풀다가) 막할까 봐 두렵다"면서도 이내 "(손자가) 마음이 여리고 다부지지 못해 걱정"이라면서 한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득점 발원' 연등 앞에서 차분히 양손을 모은 세 가족. 어머니는 두 눈을 감고 기도하다가 감정이 북받쳤는지 어느새 흥건하게 고인 눈물을 닦았다. 부모와 함께 온 중학생 남동생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서울 중구 명동성당은 앞선 두 곳과 달리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수능 미사가 이뤄졌다. 성당 입구에는 '미사 중 입장 불가'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오전 8시 30분 성당 안에는 9명 정도가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 있었다. 절반은 관광객이었고 나머지 중년 여성들은 고개를 숙인 채 기도하고 있었다.
성당 앞 벤치에서 만난 50대 여성 최 모 씨는 강남구 대치동에서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하는 자녀를 응원하기 위해 전날 울산에서 올라왔다. 최 씨는 오전 8시 전에 강남구 압구정동 한 고사장에 자녀를 데려다주고 시험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천주교인은 아니지만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기도하러 왔다고 했다.
50대 여성 강 모 씨도 자녀를 배웅하고 곧장 이곳에 달려왔다. 강 씨는 "자녀가 계속 걱정하길래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 보라고 기도하러 왔다"며 "평소 도시락 반찬으로 먹는 불고기에 계란말이, 시금치 된장국을 싸줬는데 집에 와서 치킨에 엽기떡볶이를 먹고 싶다 해서 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수능미사를 지켜본 싱가포르 출신 관광객 50대 여성 A 씨는 "싱가포르가 '호랑이엄마'(Tigher Mom) 나라지 않느냐"고 웃으며 "우리도 이런 문화가 익숙하다"고 밝혔다.
A 씨는 "우리는 좋은 고등학교를 보내려고 부모들이 기도하는 문화가 있다. 나라는 다르지만, 그런 마음이 충분히 공감한다"며 "부모라면 아이의 성공을 바라는 게 당연하다"며 수험생과 가족을 응원했다.
올해 수능은 4교시 탐구 영역까지만 응시하면 오후 4시 37분, 제2외국어·한문까지 치면 오후 5시 45분 돼서야 종료된다. 오후 늦게까지 전국 종교시설들에는 수험생 가족들의 간절한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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