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도와주세요' 한마디에 '강남 8중 추돌' 현장 뛰어든 청년
20대 무면허 운전자 최초 목격 유차열 씨 인터뷰
"성희롱 등 자칫 가해자 될 수 있단 댓글에 가슴 아팠어요"
- 정윤미 기자
"너무 순식간이어서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지난 2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발생한 8중 추돌 사고 현장에 맨몸으로 뛰어든 청년이 있다. 사고 운전자는 이미 송파구에서 뺑소니를 저지르고 13㎞를 도주해 온 상태였다.
"도와달라"는 외마디 비명을 듣고 반사적으로 현장에 달려갔다는 유차열 씨(28). 그는 5일 '뉴스1'과 전화에서 "당장 이 사고를 멈춰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한다는 유 씨는 서울 강남역 12번 출구 인근에서 지인 자동차를 기다리고 있다가 사고를 목격했다.
'끼익'. 유 씨는 "흰색 승용차가 갑자기 액셀을 엄청 세게 밟더니 차에서 굉음이 났다"며 "이 차가 앞 차를 한번 박았는데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주욱 가길래 처음에는 급발진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후진해서 뒤에 멀리 있는 차까지 또 박았다"며 "그리고 다시 앞으로 와서는 또 앞 차를 박고 후진해 인도에 있는 연석과 부딪혔다"고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도와주세요"
그 순간 가해 차에 부딪힌 어느 피해자의 절규가 유 씨 귀에 꽂혔다. 그는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이 일상복 차림 그대로 현장에 뛰어들어갔다.
유 씨는 중앙차선을 넘어 나무와 충돌 후 잠시 정차하는 가해 차로 곧장 달려갔다. '똑똑'. 운전석 문을 두드린 다음 열려고 하는데 잠겨 있었다. 뒷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사고를 목격하는 시민들을 향해 "차 문이 잠겨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소리치고는 일단 후퇴했다.
유 씨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건 오토바이 운전자가 쓰러진 직후였다. 당시 가해 차는 역주행해서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그대로 들이받고 다시 후진해 뒤차와 부딪히고 잠시 정차 중이었다. 그는 "오토바이 운전자를 박고 더 있다간 피해가 클 것 같았다"고 이유를 밝혔다.
다행히 이번에는 운전석 문이 반쯤 열려있었다. 유 씨는 그 문을 붙잡고 서서 운전자에게 나오라고 손짓했다. 운전자는 "빨리 문 닫아라" "안 나간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버텼다. 그가 차 키를 뽑으려고 허리를 반쯤 숙여 차 안으로 들어가자, 운전자는 급기야 후진을 시작했다.
그렇게 유 씨는 10초가량 뒷걸음치는 가해 차를 맨몸으로 막아섰다. 결국 운전석을 비집고 들어가 발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는 "운전자가 여성이다 보니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며 "(차에서 안 나오려 하니) 차 키를 뽑은 다음 움직이지 말고 그 안에 있으라고 하고 문을 닫았다"고 했다. 그 순간 멀리서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유 씨는 소방차가 도착하기 직전까지 사고로 꽉 막혀 있는 차들을 향해 갓길로 가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만난 소방관에게 운전자 차 키를 전달하고 속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본인도 오토바이 운전자처럼 쓰러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거듭해 "그런 거는 생각조차 못 했다"고 말했다.
유 씨는 사고가 지난 지 사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관련 뉴스나 영상을 본다고 했다. 휴대전화 너머로 담담하게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지만 사고 후유증은 쉽게 가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칫 잘못하면 제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댓글을 보고는 조금 마음이 아팠어요"
대부분은 응원과 격려를 해줬지만 일부 자기 행동을 왜곡해서 바라보는 시선에 속상했다고 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특히 운전자가 여성이다 보니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성희롱 등으로 고소당할 수 있다는 댓글들을 볼 때면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한 건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유 씨는 "도와드리려 했는데 자칫하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댓글에 마음이 아팠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말이 이해도 된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또다시 비슷한 일들이 벌어져도 그때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성희롱 등 일부 댓글 관련) 이렇게 생각하시는 부분들은 많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 씨는 "최근 들어 이런 비슷한 사고들이 몇 번 있었던 거 같다"며 "다음에 비슷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이런 분들에 대한 처벌이 강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때 경찰관이 되고자 했던 유 씨. 그는 마지막으로 "지금처럼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운전자 김 모 씨는 이날 오후 1시쯤 무면허 상태에서 송파구 거여동 한 이면도로에서 4세 남아가 탄 유아차를 밀던 30대 여성을 치고 도주하는 과정에서 강남역 인근에서 오후 1시42분쯤 오토바이·자동차 등 8중 추돌·역주행 사고를 일으켜 구속됐다. 이번 사고로 총 11명이 상처를 입었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younm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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