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공식 추모 공간 마련돼야"…밤 늦도록 시민 발길
해밀톤호텔 서쪽 골목과 이태원광장서 추모행사 열려
159 송이 국화꽃·음료수·과자로 희생자 추모…"기억할게"
- 정윤미 기자
"혹시나 언제 어디서 새 생명으로 시작했다면,처연한 국화 대신 축복과 환희와 축하의 나날이 이어가기를…늘 평온하길 바랍니다"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이한 29일 밤 이태원 거리에는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59명이 희생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해밀톤호텔 서쪽 골목에는 한쪽 벽을 따라 추모의 꽃과 술병들이 줄지어 놓여있었다. 음주를 못 하는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음료수와 과자들도 눈에 띄었다. 핼러윈 복장에 어울리는 금색 왕관도 자리했다.
추모객들을 위해 골목 안 편의점 측에서는 희생자 수에 맞게 159송이 국화꽃을 준비해 가게 앞 아이스크림 냉장고 위에 올려두기도 했다.
10·29 이태원 참사 2주년을 기록하는 행동독서회는 이곳에서 오후 6시 34분부터 '이태원, 그 골목에서 다시 만나자'는 의미의 추모 행사를 진행했다. 6시 34분은 사고 발생 3시간 40분 전 압사가 언급된 최초 신고가 접수된 시각이다.
행동독서회 소속 10여명은 차가운 골목 바닥에 앉아 20분간 침묵하고 책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를 읽었다. 이 책은 사고 진상규명과 정부 책임을 촉구하는 유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정인식 작가는 "2주기를 맞아 참사를 기억하고 사회구조적으로 참사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언제 어디서든 또다시 참사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슬프고 절박한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오후 7시 사고 현장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한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광장에서는 추모 메시지 낭독문화제가 이어졌다.
이태원 참사를 상징하는 보라색의 목도리, 모자, 재킷을 걸친 시민 30여명이 삼삼오오 광장에 모여 전자촛불을 밝혔다. 부모 양옆에 앉아서 경건하게 관람하는 어린이들도 제법 있었다.
희생자 유족, 친구, 제자, 직장 동료 등 시민들은 사전에 작성한 추모 메시지를 통해 "미안하다" "보고 싶다" "편히 쉬어요" "사랑해요" "기억할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의 마음을 전했다.
한 여성 참가자는 추모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다 그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20대 회사원 김연웅(29) 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간 맞춰서 추모 현장을 찾았다. 김 씨는 사고 당일 현장에 있었으나 일찍 귀가해 사고를 피했다. 하지만 남아있던 초등학교 동창을 잃었다.
헌화를 마치고 나온 김 씨는 "공식 추모 공간이 없다"며 "서울시와 정부의 진상조사도 중요하지만, 참사이자 재난이고 안전에 대해 경종을 울린 사건인데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제대로 구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8.24m²(5.5평) 크기 골목에는 추모 행렬과 지나가는 시민들 그리고 경찰과 취재진이 뒤엉키면서 다소 혼잡했다. 위험한 단계는 아니었지만 온전히 추모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편의점을 제외한 골목 안 가게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younm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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