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보고 X년이" 풍자와 조롱, 어디서 갈릴까[체크리스트]

안대 쓴 백종원 모방, 문제 안 됐는데…전문가들 "메시지 없으면 조롱"
'직장 내 괴롭힘'·'성차별' 등 사회적 맥락 무시…단순 흉내는 외면

편집자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거나 쟁점이 되는 예민한 현안을 점검하는 고정물입니다. 확인·점검 사항 목록인 '체크리스트'를 만들 듯, 우리 사회의 과제들을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

ⓒ News1 DB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풍자를 하세요, 조롱 말고요."

지난 26일 공개된 'SNL 코리아'(SNL)의 드라마 '정년이' 풍자 영상에 달린 댓글입니다.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에서 인기를 끈 여성 국극을 소재로 방영 중인 드라마인데요. 미성년자인 여주인공을 특정 신체 부위와 이름을 합성한 'X년이'로 부르고, 그가 부르는 판소리 춘향전 '사랑가' 가사를 성행위가 연상되도록 바꾸는 등의 패러디로 성적 희화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SNL 등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특정인을 따라 한 영상이 도마 위에 오르는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 '흑백 요리사'에 나온 심사위원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최종 우승자 '나폴리 맛피아'(본명 권성준)을 흉내 낸 방영분은 재밌다며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 끗 차이로 결정되는 조롱과 풍자. 어떻게 봐야 할까요?

대통령 부부·백종원 흉내는 호평받았는데…"메시지 없는 풍자는 조롱"

30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SNL의 풍자 영상이 조롱 논란에 휩싸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19일 방영된 영상에선 아이돌 그룹 '뉴진스' 하나의 어눌한 한국어 말투를 과장되게 따라 했다며 여론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최근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말투나 몸짓을 비하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습니다.

특정 인물의 말투나 당시 상황을 모방하는 풍자(패러디)는 희극이나 영화 등에서 웃음을 주기 위해 자주 사용된 기법 중 하나입니다. 이 과정에서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 등을 과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작가와 배우가 사회적 맥락을 첨가해 재미를 더하기도 합니다. SNL 역시 '흑백 요리사'뿐만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 부부,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유명인들의 말투나 생김새를 따라 하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다만 이번에 논란이 된 풍자 영상은 권력자들을 따라 한 것과 결이 다르다는 지적입니다. 이들의 외양과 행동을 모방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친근하게 여기도록 돕거나 정치인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삼는다면, 단순 모방을 넘어서서 이를 통해 보여주려는 '메시지'가 분명해야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시민들이 한강 작가의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2024.10.24/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그런 점에서 이번 풍자엔 '메시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니는 유명 아이돌 그룹이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증언하기 위해 국회에 섰습니다. 하지만 이번 풍자 영상엔 그저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의 모습이 부각될 뿐입니다.

한강 작가는 5.18 희생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글을 쓰며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영상 속 게슴츠레한 눈과 구부정한 등에선 이런 맥락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1950년대 한국에서 여성의 사회적 활동과 자아실현을 상징하는 '여성 국극'의 맥락도 'X년이'라는 이름에선 찾기 힘듭니다.

사회적 약자 다룰 땐 접근법 달라야…약자에 대한 인식·철학 있는 풍자 원해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외국인의 어눌한 말투를 과장하거나 사회적 성차별이 심했던 당시 여성 국극인들을 성적인 요소를 첨가해 모방한다면 이건 대중들이 보기에 비하나 조롱으로 볼 여지가 크다"며 "정치인 등 권력자를 대상으로 할 때랑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할 때의 접근법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정말 이들을 대상으로 패러디하고 싶었다면 교과서 11곳에 한강 작가의 작품이 인용됐음에도 연락처를 몰랐다는 이유로 이를 지급하지 않은 저작권 협회 이야기를 하거나, 국극을 하고자 하는 정년이의 마음을 이용하는 극 중 방송국 PD를 풍자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며 "지금의 대중들은 단순 흉내가 아닌 약자에 대한 인식과 철학이 있는 풍자를 원한다"고 덧붙였습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