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스포츠 위기'…10년 후에도 야구·스키 즐길 수 있을까

폭염·폭우에 야외 스포츠 경기 힘들어져…스키인 '기후 위기' 절감
크보플 "야구 위해 환경 보호 동참"…대나무 '짝짝이'로 응원봉 대체

프로야구가 사상 첫 천만 관중을 달성한 15일 오후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4 신한 SOL 뱅크 KBO리그' SSG 랜더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를 찾은 야구팬들이 응원을 펼치고 있다. 2024.9.15/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올해는 고척스카이돔만 갔어요. 야외 직관은 도저히 못 가겠어요."

(서울=뉴스1) 유수연 기자 = 16년 차 키움 히어로즈 팬 정다혜 씨(35·여)는 지난 6월 잠실야구장에서 '입석'으로 경기를 관람했다. 6월 초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햇볕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다. 3루 쪽 좌석은 햇빛이 너무 강해서 원정 팬 대부분은 5회까지 경기장 맨 뒤 지붕 밑에 서서 경기를 봐야 했다.

정 씨는 "경기 시간이 너무 길어 그동안 더위를 참을 수 없다"며 "주변 친구들도 온열질환 걱정에 7·8월에는 야구장을 찾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기후 위기를 피부로 느낀 팬들은 자발적으로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야구'를 추구하는 단체 '크보플'(KBOFANS4PLANET)이 대표적이다.

이상기후로 몸살 앓는 프로야구…스키 10년 후 한국에서 못 즐길 수도

KIA 타이거즈가 1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2024 프로야구 KBO리그의 막이 내렸다. 올 시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982년 출범 후 처음으로 10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역대급 흥행을 누린 프로야구지만, 올여름 기록적 폭염과 국지성 호우로 경기 운영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30일 KBO에 따르면 올 시즌엔 폭염으로 경기가 취소되는 일이 4번이나 발생했다. 지난 9월 부산 사직야구장에서는 총 41명이 온열질환 증세를 호소했고 11세 소년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결국 KBO는 경기 개시 시간을 오후 2시에서 5시로 긴급 변경했다.

이상 기후로 몸살을 앓는 건 프로만이 아니다. 진선화 씨(45·여)는 초등학교 저학년 야구 리그에서 뛰는 아들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프로야구도 취소되는 폭염에 오전, 오후 2경기씩 치러야 해 유소년 선수를 자녀로 둔 부모들은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진 씨는 "유소년 경기는 프로처럼 일정을 미루는 게 쉽지 않아서 비가 오면 1회만 하고 실력과 상관없이 뽑기로 진출팀을 가릴 때도 있다"며 "프로야구의 미래가 될 유소년 선수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의 환경에 노출되는 게 걱정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매서운 한파가 이어지고 있는 25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 스키장에서 시민들이 스키와 보드를 타며 겨울을 만끽하고 있다. 2024.1.25/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스키장도 개장이 늦춰지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2022년 11월 중순까지 한낮 기온이 15도를 웃돌자, 강원도 소재 소노벨 비발디파크, 휘닉스, 용평리조트 등은 11월 말 예정이었던 개장을 12월로 미뤘다. 스키를 즐기는 동호인들 사이에선 10년 후엔 한국에서 스키를 즐기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말이 나온다.

중앙대학교 스키부 주장 박정욱 씨(23·남)는 "올해 2월 말~3월 초쯤 갑자기 날이 따뜻해져서 슬로프에 있는 눈이 축축해져 몇 슬로프를 타지 못했다"며 "신입생 때는 냉동실 대신 용평리조트 외부에 음식을 보관했는데 저번 시즌에는 오후에 온도가 갑자기 올라가서 음식을 다 버려야 했다"고 말했다.

"스포츠 지속가능성 고민해야 할 시기"…환경 보호 위해 발 벗고 나선 팬들도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 시대에는 스포츠 종목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야외에서 하는 스포츠는 기상 영향을 많이 받아 폭염, 폭우 상황에서 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더위 때문에 여름 기온이 많이 올라간 것처럼 보이는데 최저기온이 계속 상승해 기온이 더 올라간 건 가을과 겨울"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실내 스포츠처럼 폭염, 폭우 등 극단적 기상현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종목을 더 즐기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야외 스포츠를 계속 즐기려면 매우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가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는 걸 몸소 느끼고 기후 활동가로 나선 시민들도 있다. 3년 차 삼성 라이온즈 팬 채경민 씨(35·여)는 올해 처음으로 우천 취소로 발길을 돌려야 해 허탈했다. 9월에는 해가 지고도 열이 가시지 않아 벌게진 얼굴로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채 씨는 "야구를 오래 보진 않았지만,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도 기상 관련 문제가 많아졌음을 느낀다"며 "야구를 좋아하는 마음과 야구로 인해 파생되는 환경 문제에 대한 죄책감이 공존했다"고 밝혔다. 그가 '크보플'에 가입한 이유다.

크보플은 기후 위기에 문제의식을 느낀 야구팬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로 야구장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 등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 이들은 플라스틱 응원봉 대신 친환경적인 대나무 짝짝이 '대짝이' 체험단을 모집하기도 했다.

크보플에서 활동하는 서지우 씨(27·여)는 "매년 더 더워지고 기후에 이상 현상이 생긴다는 걸 몸으로 느끼면서 환경에 관심이 많아졌다"며 "좋아하는 야구로 환경을 위해 소리 내고 싶어서 (크보플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NC파크에서 '대짝이' 체험단을 모집하는 크보플 활동가들. (크보플 제공)

shush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