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유튜버 vs 서울대생'…청소년 선택은?[출구 없는 161분]②
'SNS 과몰입' 6학년 민지, 또래 여학생 브이로그 보고 과몰입 완화
청소년 SNS 제한?…"우회 방법, 뚫는 법 이미 알고 있지만 안해요"
- 정윤미 기자, 이기범 기자, 김예원 기자, 김종훈 기자
(서울=뉴스1) 정윤미 이기범 김예원 김종훈 기자 = 만 14세 미만 어린이는 SNS 가입이 막혀있다. 규정상 중학교 2학년 생일이 지나야 가능하다. 학교폭력 등 문제로 교내 카카오톡 단체카톡방 이용이 제한되면서 인스타그램 다이렉트메신저(DM)을 이용하는 초등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6학년 민지(가명)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경기 수원 소재 모 초등학교 6학년 점심시간. 민지는 교실 한가운데 서서 배꼽인사를 하더니 음악도 없이 '틱톡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일부 짓궂은 남학생들 야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10초 안팎의 짧은 무대였지만 사전 연습 없이는 소화하기 힘든 안무임은 틀림없었다.
민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추천 영상에 뜨는 거 몇 번만 보면 외워진다"고 말했다. 춤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얼마나 영상을 봐야 아이돌처럼 자연스럽게 출 수 있을까. 4시간. 민지의 하루 SNS 이용 시간이었다. 2023년 기준 10대 청소년 스마트폰 일평균 시간 2시간 41분과 비교하면 두배 가까이 많았다. 민지도 "솔직히 많이 하긴 한다"면서 인정했다.
"솔직히 6학년이 되고부터 엄마하고 자주 싸우거든요.그럴 때마다 너무 속상해서 울고 싶고 짜증도 나요.그런데 SNS 보면 기분이 풀려요"
민지는 SNS를 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초등학생들이 부모 동의를 받고 이용할 수 있는 카카오톡, 유튜브 외에도 민지는 틱톡과 인스타그램도 하고 있었다. 틱톡 추천 영상을 보다가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들과 소통하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만 14세 미만 가입 금지가 더는 무의미해 보였다.
"제 인스타는 비공개 계정이에요.보통 다른 반이나 주변 학교 친구들이 추천에 뜨거든요.누가 저를 팔로우하면 저도 맞팔(로우)해요.그렇게 인스타 친구가 되면 서로 스토리도 보고 DM도 해요"
그러던 어느 날 민지는 틱톡에서 우연히 또래 여학생의 일상 브이로그를 보게됐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 취침 전 독서하는 30초 분량의 짧은 하루였다. 민지는 한 번 따라 해보고 싶었다. 한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됐다. 계획표까지 만들어 실천한 지 3주가 지났다. 민지의 SNS 시간은 2시간으로 줄었다. SNS에 빠진 민지를 구해준 건 부모도 교사도 아닌 '틱토커'였다.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는 민지의 계획표는 일단 오늘도 진행형이다.
SNS 과의존(중독)을 SNS로 극복한 민지의 사례와 같이 요즘 청소년들 일상에 SNS는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청소년들도 잘 알고 있다. 지나친 SNS 사용이 유해하단 사실을. 중독은 필사적으로 원치 않는다. 그런데도 SNS 사용 제한에 대해서는 우려를 드러낸다. 이유가 뭘까. 답변을 찾기 위해 뉴스1은 두 달 정도 서울·경기 소재 초·고등학교 3곳을 방문해 학생 75명을 직접 만나 1시간 이상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2007년 애플 아이폰이 출시된 해에 태어난 고등학교 2학년 이하는 소위 '스마트폰 네이티브', 'SNS 세대'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은 입학과 동시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3년간 온라인·비대면을 통해 처음 사회생활을 배웠다. 통상 초등학교 3학년을 전후로 스마트폰을 소지한다. 가입 연령 제한 탓에 초등학생은 카카오톡·유튜브, 중·고등학생은 인스타그램을 이용한다.
청소년이 하루 상당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는 대체로 스마트폰을 쓸 수 없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학생 휴대전화 사용 제한 현황'에 따르면 전국 초등학교 1만1718곳 중 교내 소지가 불가한 경우는 23%(2700곳)였다. 교내 소지만 가능하고 수업 및 일과 중 사용이 불가한 학교는 41.7%(4877곳)다. 10곳 중 6곳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중학교는 82.8%, 고등학교는 45%였다.
"놀 시간이 있어야 놀죠""친구들 학원 시간이 다 달라서 만날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요"
그렇다 보니 대체로 '방과 후' SNS를 한다. 구체적으로 '학원 이동 시간', '취침 전'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이용 제한에 대해 "여가 생활의 50%가 사라진다" "취미, 학업 등 유익한 영상도 많은데 어린이가 보기 부적절한 콘텐츠만 차단했으면 좋겠다" 등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임 모 교사는 "학원 스케줄 때문에 놀 시간이 없거나 친구 간 시간 맞추기도 어렵다 보니 SNS를 놀이처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에게 SNS는 학교·학원의 굴레 속 '유일한 놀이'였다. 부모 중에는 지나치게 놀이에 빠질까봐 스크린타임(아이폰)·패밀리링크(갤럭시폰) 등 각종 앱을 통해 자녀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통제하고 있다. 국내외 막론하고 청소년 SNS 금지법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스마트폰 네이티브에게 이 같은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실제로 상당수 초등학생은 부모님이 통제하는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 본 적 있다"고 했다. 각 학교 인터뷰 과정에서 가장 뜨거웠던 주제였다. 학생들은 '제한 해제'를 "뚫는다"고 표현했다. 그러한 경험이 없더라도 인터넷 검색, 친구와 협력 등을 통해 얼마든지 각종 우회로나 뚫는 법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알고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단지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본성이잖아요"
청소년 SNS 이용 제한에 반대하는 고등학생 홍 모 양(17)은 이같이 말했다. 홍 양 역시 고교 진학 전까지 부모님 강요로 스마트폰 제한 앱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뚫은 기억이 매우 많다"며 나중에는 부모님 앞에서만 안 하는 척 뒤에서 몰래 다 사용했다고 고백했다. 중학교부터는 SNS 없인 친구들과 소통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학교 게시판 게시물조차 전화번호 대신 SNS 계정이 적혀있다.
홍 양은 어른들이 SNS에 대해 막연한 편견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네이버로 드라마 찾아보는 거는 괜찮다고 하면서 유튜브는 시간 낭비라고 못하게 하는데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제로 어른들이 SNS 더 많이 사용하지 않느냐'고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끝으로 청소년들이 SNS에 지나치게 열광한 나머지 장래 선망하는 직업이 '유튜버'가 됐다는 어느 설문 결과에 대해 학생들에게 다시 물어봤다. '100만 유튜버'와 '서울대생' 둘 중 무엇이 되고 싶냐고. 75명 중 10명을 제외하고는 후자를 택했다.
유튜버를 택한 학생 중에서 대게는 '경제적 이유'를 꼽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이들에게 구독자는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지표이자 연봉 이상의 가치였다. 반면 서울대생을 택한 이들은 '100만 이상 구독자 수를 늘리기 어려운 구조', '알고리즘 선택을 받지 못할 경우 안정적인 수익 창출 불가' 등 현실적인 이유를 꼽았다. SNS 생태계를 완전히 이해하고 판단한 스마트폰 네이티브다운 선택이었다. 틱토커를 따라 하는 민지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냐고요?전혀요, 굳이 유명해져야 하나요"
younm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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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23년 기준 10대 청소년의 스마트폰 이용 시간은 하루 평균 161분. 심할 경우 휴대전화 화면에 펼쳐진 '한 뼘 세상' SNS에 하루 20시간 매달린다. 정치권 논의대로 청소년들의 SNS 접속을 차단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뉴스1은 약 두 달간 전국 초등학교·고등학교·치유 캠프에서 청소년·인플루언서 등 총 95명을 만나 SNS 과의존 실태와 해법을 추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