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커진 아이 빈자리…'아직도 그러냐' 말 상처"[이태원 2주기]
"무거운 마음으로 2주기 맞아"…'공감' 통해 2차 가해 막아야
특조위 조사 '기대'…"미래엔 추모의 마음만으로 오늘 맞길"
- 유수연 기자, 박혜연 기자
드문 경우지만 서로 맞으면 횡단보도에서 나는 이쪽에, 딸은 반대에 서 있을 때가 있었어요. 서로 지나치면서 어디 가냐고 물어보던 모습이 생각나요.
(서울=뉴스1) 유수연 박혜연 기자 = 2년 전 이태원 참사로 딸을 잃은 안 모 씨(남·61)는 시간이 갈수록 고 안지호 씨에 대한 기억이 생생해진다고 했다. 아침에 방에서 나와 손을 흔들던 모습, 학교 가기 전 방에서 화장하던 모습, 식탁에 앉아 밥을 먹던 모습 등 딸과 함께하던 일상을 떠올리는 아빠의 눈이 빛났다.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빈자리는 명절에 더 크게 느껴진다. 조카를 잃은 김진성 씨(남·50)는 "설날에 3만큼 아파요. 그럼, 추석 때도 아픈 게 3인가? 그게 아니에요. 그다음 설에 또 3이 더해져요"라며 "그다음 명절엔 9가 되고 12가 되고 15가 되고. 그게 빈자리가 커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159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가 29일로 2주기를 맞았다. 유가족들은 2년이 지났음에도 진상 규명까진 갈 길이 멀어 무거운 마음으로 기일을 맞았다고 전했다.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하필이면 2주기 전에 책임자들에 대한 재판 결과가 나왔다"며 "그 사람들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순간 책임이 오롯이 그곳에 간 아이들에게 돌려지는 듯한 상황이 돼서 마음이 무거웠다"고 진상 규명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임재 전 서울경찰청장 등에 무죄가 선고되자 유가족들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했다. 그들은 지난 9월 출범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참사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걸고 있었다.
특히 이들은 참사 직후 정부와 소방 등의 행적에 의문을 표했다. 고 문효길 씨의 아버지 문성철 씨는 참사 직후 한 유가족이 아이의 시신이 안치된 다목적 체육관을 찾았으나 한남동 주민센터에 실종 신고를 하고 와야 한다는 말에 발을 돌렸다고 전했다.
신고를 마치고 돌아오니 아이는 사라졌었다. 가족들은 새벽에 서울, 경기, 인천에 있는 장례식장을 돌아다니며 아들을 찾아야 했다. 문 씨는 "우리가 그렇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지만, 국가는 한 번도 대답을 해준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특조위 활동을 통해 재판에서 밝히지 못했던 잘못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책임 있는 사람은 책임을 지고 재난 안전 구조 시스템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낱낱이 드러내서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특조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가족들은 2년간 지지와 연대를 표했던 시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안 씨는 "평생 약자가 되리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참사를 당해서 약자가 됐다"며 "(시민의) 입장이 됐을 때 내가 할 수 있었을까 이런 마음도 들고 마음을 가져주시는 것만 해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광장 분향소를 유가족들과 지키고 삼보일배, 오체투지 행진 등을 함께한 시민들처럼 해외 참사의 유가족도 이태원 참사에 공감했다.
지난해 한국을 찾았던 2001년 일본 아카시시 불꽃축제 육교 압사 참사의 유가족은 올해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우리와 연대하기 위해 왔었을 때 국적이 다르고 전혀 다른 사람이었지만 오랫동안 만난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25일 "혐오·모욕성 내용으로 2차 가해 우려가 커진 뉴스 댓글 창 일시 중지를 요청한다"며 31일까지 언론사와 포털의 참사 관련 기사 댓글 창을 막아달라고 하기도 했다.
김 씨는 "'아직도 그러냐'는 댓글이 달리는데 우리는 시작도 안 한 거나 다름없다"며 "특조위가 이제 시작인데 그런 말이 상처가 많이 된다"고 털어놨다.
이 위원장은 '공감'을 강조했다. 그는 "2차 가해나 갈등은 공감을 못 해서 생기는 문제"라며 "공감 능력 있고 의식 있는 사람들이 2차 가해를 지적하고 그렇게 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어야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특조위는 참사 생존자 등 목격자를 찾고 있다. 이태원 참사는 목격자가 많기 때문에 진상 조사에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진술이 큰 보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조위 조사가 시작된 후 지난 23일까지 나선 생존자들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원장은 "생존자들은 '친구들은 다 그렇게 됐는데 왜 살아왔니'와 같은 2차 가해와 죄책감 때문에 숨어버렸다"며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나오셔서 참담한 참사의 피해자로서 진실을 밝히는 데 함께하자"고 요청했다.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의 첫발을 뗀 지금 유가족들은 추모만 하고 있을 순 없다고 말한다. 이 위원장은 "추모 기간에도 추모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게 마음 아프다"며 "미래에는 오롯이 추모의 마음으로 오늘을 맞을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shush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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