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신청하셨죠" 이미 미끼 물었다…'트루먼쇼'같은 보이스피싱

카드 배송 기사로 시작해 검사까지…정교한 시나리오에 피해자 홀려
악성앱 설치 유도해 카메라·녹음·GPS로 피해자 일거수일투족 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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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카드 배송 기사입니다. OO카드 신청하셨죠?"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시작은 카드 배송 기사다. 카드를 신청한 적 없다고 하는 순간 미끼를 물게 된다. 배송원 사칭범은 가짜 카드사 고객센터 번호를 알려주면서 고객센터 사칭범한테 피해자를 자연스레 연결한다. 그렇게 피해자가 가짜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개인정보가 유출됐거나 연동 계좌가 사고 계좌일 가능성이 높다”며 원격제어 앱을 깔도록 유도한다.

이후 악성 앱에 감염된 스마트폰으로 금융감독원인 것처럼 전화번호 표시를 바꿔 전화를 걸고, 다시 검찰청에 연락해 보라고 유도해 검찰 사칭범에게 연결한다. 이 과정에서 금감원 과장은 선한 역, 검사 역할은 악역을 맡아 피해자의 심리를 조정한다.

마치 영화 '트루먼쇼'를 방불케 할 정도로 보이스피싱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23일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이 정부 기관으로 위장한 기관사칭형 수법으로 60대 이상 여성을 노리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발생한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총 6523건으로, 피해액은 2887억 원에 이른다. 건당 피해액으로 환산하면 4426만 원 정도다.

특히 상대적으로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60대 이상 고령층 피해가 증가하면서 기관사칭형 중 1억 원 이상 피해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172% 증가한 763건으로 집계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고령층 중에서도 60대 이상 여성 피해 비중이 높았다. 9월 기준으로 전체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 피해 중 60대 이상 여성 비중은 23%에 이른다.

경찰청은 △은퇴로 인한 사회적 활동이 감소하면서 발생하는 정보 부족 △고령화에 따라 심리적 압박에 더 민감해지는 경향을 이유로 꼽았다. 또 "범죄조직은 이 점을 이용하여 선한 역과 악역으로 역할을 분담해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완전히 세뇌하게 시킨다"고 설명했다.

악성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해 모든 통신을 범죄조직원과 연결해 피해자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카메라나 녹음, GPS 위치 기능을 탈취해 피해자를 24시간 내내 지켜보는 방식이다.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시나리오를 고도화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투자 손실을 입은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 사례도 확인됐다.

안찬수 경찰청 마약조직범죄수사과장은 "기관사칭형처럼 전형적인 수법은 범죄 시나리오나 최소한의 키워드라도 숙지해 두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K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