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물에 슬쩍 손댄 경찰 "신뢰도에 치명"…다중 감독 체계 필요

서울 강남서·용산서서 업무상 횡령 혐의로 적발…국수본, 전수조사 나서
전문가 "관리 체계 있지만 감독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정기 점검 필요"

경찰 로고./뉴스1 ⓒ News1 신채린 기자

(서울=뉴스1) 유수연 기자 = # 지난 6월부터 서울 강남경찰서 수사과 소속 정 모 경사는 불법 도박장에서 압수한 현금 3억 원어치를 빼돌렸다. 범죄예방대응과로 보직을 옮긴 뒤에도 대담한 범행을 계속했던 정 경사는 결국 자신의 사무실에서 체포돼 지난 17일 구속됐다.

# 서울 용산경찰서 형사과 소속 A 경위는 정 경사가 체포된 것을 보고 겁을 먹었다. 그 역시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압수한 금품을 횡령했기 때문이다. A 경위는 빼돌린 현금을 채워 넣으려다 자신이 근무하던 용산경찰서에 긴급 체포됐다.

그동안 직접 관리하던 압수물을 횡령하는 촌극이 반복되면서 경찰의 압수물 관리 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오는 25일까지 전국 경찰관서를 대상으로 '통합 증거물 관리현황 전수조사'에 나섰다.

단 2건뿐일까…전문가 "신뢰도에 직결, 엄격 관리해야"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20일 경찰관들의 연이은 업무상 횡령 사건에 대해 "만연한 사건은 아니고 극히 일부 경찰관들의 비위행위라고 보인다"면서도 "형사사법 절차 신뢰도와 관련되기 때문에 경찰에서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만약 (횡령한) 경찰관들이 사명감과 조직에 대한 자긍심이 있었으면 훔쳐 가진 않았을 것"이라며 "조직 전체에 왜곡된 문화와 조직 몰입을 못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어서 자신이 수사하던 사건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했을 거라고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킥스(KICS·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압수물을 등록해 관리하는 등 압수물 관리 체계는 갖춰졌지만, 이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압수물 관리는 관심 밖의 영역에 있는 게 현실이니까 감독이라든지 꼼꼼하게 챙기는 것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수사가 장기화할수록 압수물 점검이 허술해진다는 의견도 나온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압수했던 물건을 검찰에 송치할 때는 바로 확인이 된다"며 "두 사건도 송치되기 전 공백에 현금 보관에 신경 안 쓰는 사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압수물은 중요한 증거…"다중 감독 체계 갖춰야"

전문가들은 압수물에 대한 다중 감독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사건 수사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금고나 압수물 보관 장소에 현금이 오랫동안 보관된다"며 "경찰이 무기고 관리하듯이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압수물은 중요한 사건 관련 물품이기 때문에 외부에서도 정기적인 감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며 "어떤 조직이든지 내부 통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운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사과장이나 형사과장이 관리하던 압수물을 청문감사관이 입회해서 매달 점검하는 시스템으로 갖춰야 한다"며 "내부 통제만으로 부족하다면 회계사, 세무사, 변호사, 대학 교수, 시민단체 관계자를 포함한 위원회를 구성해 분기별로 외부에서 감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shush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