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복귀 반대" 근조화환만 200개…달라진 'K팝 팬덤' 왜?

SM엔터, '근조화환 폭탄' 3일 만에 아이돌 멤버 복귀 철회
'소비 팬덤' 등장에 '항의' 정당한 권리로 인식…일종의 '참정권'

14일 오전 8시 38분 서울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본사 앞에 아이돌 그룹 멤버의 활동 복귀를 반대하는 근조화환이 늘어서 있다.

(서울=뉴스1) 유수연 기자 = # 지난 14일 월요일 아침 출근길. 서울 성동구엔 바쁜 직장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연예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본사 앞에 200개가 넘는 근조화환이 줄지어 있었다. 세기도 힘들 만큼 많은 수의 근조화환을 보고 시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SM엔터테인먼트 앞 '근조화환 폭탄'은 아이돌 그룹 멤버의 복귀를 반대하는 팬들이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K팝 팬덤이 근조화환·트럭 시위나 고발장 접수 등 적극적인 불만 표출이 늘어나며 소속사 운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로서 저항심 표현한 것" vs "사생활 간섭 적절하지 않아"

1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보이그룹 라이즈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공식 입장을 통해 약 10개월간 활동을 중단했던 멤버 승한이 복귀한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승한은 길에서 흡연하는 영상, 한 여성과 입을 맞추고 있는 사진이 유포돼 사생활 논란이 불거지며 활동을 중단했었다.

팬들의 반발은 거셌다. 라이즈의 팬들은 이날부터 3일 동안 SM엔터테인먼트 앞에 근조화환을 보내 복귀에 반대했다. 결국 SM엔터테인먼트는 13일 밤 11시 45분 승한의 복귀를 번복했다.

소속사의 결정을 두고 K팝 팬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지난 14일 SM엔터테인먼트 앞에서 만난 17년 차 K팝 팬 A 씨는 "K팝 팬들 역시 소비자로서 소비에 직결된 중요한 사안에 대해 저항심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근조화환 시위는 소속사의 결정에 유감을 표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소비자'임을 앞세워 연예인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팬덤이 뭉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던 과거의 팬덤과 달리 최근 K팝 팬덤은 부정적 의견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또 팬덤이 결집해서 목소리를 내고 여론화하는 '팬덤의 정치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연예기획사 앞 근조화환 시위는 지난 5월 하이브 소속 보이그룹 BTS의 팬들이 보낸 것을 시작으로 K팝 팬들 사이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당시 BTS 팬들은 하이브가 BTS의 악성 루머에 대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조화환을 보내 항의의 뜻을 밝혔다.

걸그룹 뉴진스의 팬들은 시위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그들은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의 복귀를 요구하며 직접 법적 조치에 나섰다. 뉴진스 팬 팀 버니즈는 지난 10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새로운 어도어 경영진을 업무상 배임 및 업무 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31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 회사명에 뉴진스 팬들이 보낸 근조화환이 비춰지고 있다. 2024.7.3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소비 팬덤'의 등장 "보상 당연하다고 여겨"…"팬덤에 정치적 의식 생겼다"는 분석도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단순히 응원만 하는 게 아니라 구매를 통해서 아이돌 그룹의 성장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소비 팬덤'이 등장하면서 K팝 팬덤의 적극적 개입을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2년 차 케이팝 팬 B 씨는 "예전 K팝 문화는 그저 노래를 듣고 무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요즘엔 소속사들이 팬 사인회 등을 통해 무분별한 소비를 요구한다"며 "사람들이 자신의 소비 수준에 맞는 합당한 대우를 받고자 하는 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정 평론가는 "(K팝의) 지나치게 상업화된 부분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며 "팬들 입장에선 자기가 그만큼 돈을 지불했으니 일정 정도의 보상이 당연하다고 여긴다"고 지적했다. 다만, 사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스토킹 등의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K팝 팬덤이 더 이상 소속사의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정치가 팬덤화되는 것처럼 팬덤 역시 정치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팬들이) 촛불 시위 등 광장 정치를 보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태도를 배웠다"며 "팬들이 일종의 시민 관점에서 참정권을 행사하며 소속사가 (팬덤의) 의견을 대행해 주길 요구한다"고 해석했다.

shush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