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지 만원에 구해요"…임산부의 날 '씁쓸한 자화상'

혜택만 챙기는 '얌체족' 늘어…성심당, 임산부 배지 할인 혜택 중단
'재발급 규제·회수' 지적 나오지만 '현실성' 떨어져…대책 절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임산부 배지 1만원에 판매, 거의 새것"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임산부의 날인 10일 중고 거래 사이트에는 이런 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판매 글뿐만 아니라 임산부 배지를 사겠다는 글도 적지 않다. '가짜 임산부'로 위장해서라도 임산부에게 제공되는 혜택을 누리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은 셈이다.

임산부를 배려하는 문화가 사회 곳곳에 자리 잡았다는 걸 보여주는 동시에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부에서는 악용 사례를 막기 위해서는 배지 재발급을 엄격하게 규제하거나 출산 이후에는 임산부 배지를 회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회수에 드는 비용이나 산모들의 반발 등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법조계에선 임신 사실이 없음에도 배지를 구해 할인 혜택 등을 받을 경우 업체에 금전적 피해를 준 걸로 간주, 사기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산부의 날인 10일 대전 중구 성심당 본점과 케익부띠끄 입구에 임산부 프리패스 안내문이 붙어 있다. 대전의 유명 빵집 성심당은 임산부를 대상으로 대기 없이 바로 입장이 가능한 '프리패스' 서비스와 5% 할인을 진행한다. 2024.10.10/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대전의 유명 빵집인 성심당은 최근 임산부에게 제공했던 할인 등 서비스를 좀 더 엄격하게 살펴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임산부 배지 정도만 인증해도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 5% 할인 및 대기 없는 입장(프리패스) 서비스를 받으려면 임신 확정일, 분만 예정일 등이 적힌 서류나 산모 수첩으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최근 '새벽런', '오픈런'이라는 말을 방불케 할 정도로 성심당의 인기가 높아지자 배지를 구매해 제시하는 등 '꼼수' 때문에 나온 대책이다. 성심당 관계자는 "배지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전 매장 방침이 다 바뀌었다"며 "임산부 본인이 신분증과 임신 확인증 둘 다 들고 방문해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산부 배지는 지난 몇 년간 국내에서 여성의 임신 여부를 증명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로 사용돼 왔다. 배지를 다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배려를 받을 수 있어 지하철 좌석 이용 등 공적 영역뿐만 아니라 일반 가게에서 임산부를 위한 서비스 제공 시에도 폭넓게 활용됐다. 임산부의 날 맞이 혜택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배지 혹은 산모 수첩을 인증해야 혜택이 적용된다', '배지를 달아야 혜택이 제공된다' 등의 공지를 올리는 이유다.

'임산부 배지'가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거래되고 있다.

문제는 배지 사용과 관련해 재발급, 회수 조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중고 거래 사이트 및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살펴보니 임산부 배지가 몇천원~1만원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는 배지를 여러 개 양도하거나 판매하기도 했다.

이는 배지 재발급 및 회수와 관련해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배지는 모자보건법에 따라 만들어진 비영리법인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생산, 지급 등 주 관리를 담당한다. 출산 장려 정책 등을 담당하는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정책 홍보 등과 연계해 지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회수 및 반납은 임산부 개인의 선택에 맡길 뿐 따로 규제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담당 부처도 골머리를 썩이긴 매한가지다. 악용 사례가 나오면서 배지에 사용 연도를 기재하거나 연도별로 색깔을 다르게 하는 등 보완책도 논의되긴 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배지를 기념물로 생각해 반환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많을뿐더러, 월말에 임신한 여성의 경우 배지를 두 번 발급받아야 하는 등 절차적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법조계에서는 임신한 사실이 없음에도 배지 등을 이용해 할인 혜택 등을 받을 시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배지를 통해 제품 할인 및 무료입장 등 이익을 취할 시 업체에 금전적 손해를 입힌 것으로 간주돼 기망의 고의가 있다고 판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태정 대표변호사(법무법인 광야)는 "단순히 배지를 사고파는 건 공공 기관의 날인 등이 있지 않은 이상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도 "이를 통해 지속해서 금전적 이익을 취하거나 금액의 액수가 커진다면 사기죄로 처벌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