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현실판' 대낮 30㎝ 회칼 휘둘러 동포 살해한 중국인
[사건의재구성] 법원, 살인·살인미수 혐의 징역 22년 확정
"공격 이후 구호 조처 없이 피해자 아들·경찰 회칼 협박도"
- 정윤미 기자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국내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던 중국인 최 모 씨. 그는 자기 돈을 빌려 가서 갚지 않는 동포들을 상대로 처음부터 회칼을 휘두를 생각은 없었다.
2015년 어느 날 최 씨는 함께 일하는 60대 피해 남성 A 씨에게 자신의 임금 400만 원을 대신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A 씨는 그 돈을 가지고 그대로 중국으로 출국해 연락이 두절됐다. 최 씨가 A 씨에게 악감정을 갖게 된 건 그때부터다.
2021년 최 씨는 다른 50대 피해 남성 B 씨에게 600만 원을 빌려줬으나 40만 원만 돌려받은 상태였다. B 씨는 경기 평택 소재 건설 현장에서 13일간 근무하면 임금 150만 원을 받게 되는 데 이를 우선 채무 변제에 충당하겠다며 최 씨를 달랬다.
그러나 당시 생활비가 부족했던 B 씨는 내심 100만 원만 우선 갚고 나머지 50만 원은 자신이 사용했으면 했다. B 씨는 이 같은 사정을 평소 친분이 있던 A 씨와 또 다른 40대 피해 남성 C 씨에게 털어놓았다.
최 씨는 이런 사정을 모른 채 어떻게 하면 B 씨로부터 돈을 받아낼 수 있을까 골몰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일하는 인천 송도 건설 현장에서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하기로 하고 지난해 5월 1일 오전 10시41분쯤 서울 영등포구 소재 B 씨 집에 방문했다.
당시 B 씨는 집에서 분주하게 식사 준비 중이었다. 일자리를 제안할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판단한 최 씨는 저녁에 다시 들러서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현관에서 최 씨는 들고 온 가방에서 평소 낚시 다닐 때 사용하던 회칼을 발견했다. 전체 길이 27.5㎝ 회칼을 소지한 모습이 타인의 눈에 띄는 게 꺼림칙하다고 여겼던 그는 신발장 안에 회칼을 넣어뒀다.
그렇게 같은 날 오전 11시30분쯤 대림역 인근 식당에서 지인들과 한창 술을 마시던 중 최 씨는 A 씨의 전화를 받았다. B 씨 사정을 고려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최 씨는 기분이 상했다. 돈도 갚지 않은 A 씨가 B 씨와 C 씨까지 끌어들여 자신을 압박한다고 생각했다. 화가 치밀었다.
"B 씨, 중국 갔다 온 지 얼마 안 돼 돈도 없는데 그 돈 다 가져가면 갠 뭐 먹고 사니"
네 사람은 오해를 풀기 위해 오후 2시30분쯤 B 씨 집에 모였다. A 씨는 현관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최 씨를 다그치듯 이같이 말했다. 다시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 최 씨는 그만 A 씨 배 부위를 발로 걷어찼다. 이 상황을 목격한 B·C 씨는 양쪽에서 최 씨 몸을 붙잡고 제지했다.
그 순간 최 씨는 이들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고는 신발장 안에 보관한 회칼을 꺼내 들었다. A 씨 왼쪽 가슴 부위와 겨드랑이를 3차례 찔렀다. A 씨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이어 B 씨와 C 씨 가슴과 복부를 향해 휘둘렀다. 두 사람은 병원에 후송돼 수술받고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최 씨는 행인의 신고로 현장 출동한 경찰관들과 대치하다 끝내 현행범 체포됐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4부(부장판사 장성훈)는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최 씨에 대해 징역 22년에 처하고 압수된 회칼 1자루와 칼집 1개를 각 몰수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고스란히 남아있는 잔혹한 범행 흔적에 비춰보면 피해자들은 피고인의 무자비한 가해행위 과정에서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A 씨는 결국 사망이라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보았다"고 짚었다.
아울러 "피고인은 피해자들을 회칼로 찌른 이후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구호 조처를 하기는커녕 B 씨·C 씨를 발로 걷어차고 B 씨에게 "아들 전화번호가 몇이야"라며 "아들에게 돈 갚으라고 해"라고 말한 후 B 씨 아들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은 경찰관에게 회칼을 들이밀거나 자기 명치를 겨누면서 저항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등 범행 후 정황도 좋지 않다"며 "피해자 유족들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거로 보이고 피고인은 유족들과 B·C 씨로부터 용서받지 못해 아무런 피해 회복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자신의 책임을 피해자들에게 전가하는 진술을 여러 차례 해 자신의 범행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피고인에게 엄중한 처벌을 함이 마땅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최 씨는 1·2심 판결에 불복하고 모두 항소했으며 대법원은 지난 3월 상고 기각 판결함에 따라 형이 확정됐다.
younm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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