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임재 금고 3년·박희영 무죄…엇갈린 1심 왜?

경찰 "군중 밀집 사고 예견 가능"…구청 "안전 계획 수립 의무 없어"
유가족들 "용산구청, 인파 관리 경험 있어…검찰 항소해야"

이태원 참사 부실대응 등의 혐의를 받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4.9.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유수연 기자 = 159명의 사망자를 낸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주요 책임자 2명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엇갈렸다.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모두 참사 당시 안전 관리 대책 마련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전 서장의 혐의만 인정했다. 박 구청장은 타 자치구와 비교했을 때 안전 대비가 특별히 미흡한 점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법원, 경찰 '사고 예견 가능성' 인정 "유죄"…구청 '안전대책' 수립 의무 없어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1부(배성중 부장판사)는 30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 이 전 서장에게 금고 3년을 선고했다. 지난 공판에서 검찰은 이 전 서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한 바 있다. 이 전 서장과 같이 재판에 선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은 금고 2년을, 박인혁 전 서울경찰청 112 치안 종합상황실 팀장은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축제를 맞아 군중이 경사진 좁은 골목길에 군집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 치안 유지라는 구체적 임무가 부여된다"면서 "대규모 인명 사상이라는 참사 결과 전부까진 아니더라도 일정 방면 군중 밀집에 의한 일반 사고는 예견할 수 있었고 이를 회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사고 예견 가능성을 인정했다.

이어 "인파 집중을 예방 통제하고 이를 관리할 경비 기능(담당 경찰관)의 참여가 필요하지만 별도로 경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며 "핼러윈 축제 현장에서 인파 위험성 등 정보 수집이 필요했지만 사고 당일 현장에 정보관을 배치하지 않는 등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다"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박 구청장을 비롯한 용산구청 관계자 4명에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안전 법령엔 다중군집으로 인한 압사 사고가 재난 유형으로 분리돼 있지 않았고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2022년 수립 지침에도 그런 내용이 없었다"며 "재난 안전 법령에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해선 별도 안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어 업무상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구청 내 당직실에 재난 정보의 수집 전파 등 상황 관리에 대한 기본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다른 자치구와 비교했을 때 특별히 미흡하지 않고 각종 근무 수칙 매뉴얼도 근무실에 배치돼 사전 대비책 마련에서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외에도 두 사람에게 공통 적용된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는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 전 서장은 부실 대응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현장 도착 시각을 조작하도록 부하직원에게 지시한 혐의, 박 구청장은 참사 이후 사전 대책 수립 여부가 문제가 되자 참사 직후 이를 은폐하기 위해 허위 사실이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한 혐의를 받는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를 받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4.9.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유가족, 박 구청장 '무죄' 선고에 오열…"검찰, 즉각 항소해야"

선고 직후 두 사람의 모습도 판이하게 달랐다. "선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항소 계획이 있는지" 등의 질문에 이 전 서장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에게 할 말을 묻자 "죄송하고 또 죄송스럽다"고 하며 차량에 탑승했다. 반면 박 구청장은 별도 발언 없이 묵묵부답으로 법원을 빠져나갔다.

이날 재판은 오후 2시 이 전 서장, 오후 3시 30분 박 구청장 순으로 진행됐다. 이 전 서장 선고 땐 상대적으로 차분한 모습을 보였던 유가족들은 박 구청장의 무죄 사실을 듣고 오열하거나 고성을 지르는 등 격앙된 모습이었다. 이 중 일부는 주먹으로 박 구청장이 탄 차를 치거나 가만히 한 자리에 서서 오열하기도 했다.

선고 직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이 전 서장에 대해선 "일선 경찰의 책임을 인정했으니 당연한 결과"라면서도 박 구청장에 대해선 검찰의 즉각적인 항소를 촉구했다.

유가족들은 선고 직후 발표한 의견문에서 "피고인들은 참사 2주 전 백만 명이 몰렸다는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 1000명이 넘는 공무원을 동원하는 등 축제 개최 경험이 있으며 2020, 2021년에도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인파를 통제했다"며 "이번 참사에서도 경찰 혼잡 경비 요청을 했다면 이토록 대규모의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