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사무관인 척" 대본까지 써 준 태영호 장남의 사기극

모친 출판사서 수억 원 횡령 정황…태영호 "심려 끼쳐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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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우리 엄마니까 말만 전달하면 돼. 네가 해줘야 해. 별일 없을 거야."

A 씨에게 전화가 걸려 온 것은 지난 5월이었다.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의 장남 태 모 씨(32)는 A 씨에게 국방부 소속 김 모 사무관을 사칭해 모친인 오혜선 작가에게 전화할 것을 요구했다. 오 작가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납품 도서를 추가 주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태 씨는 이를 근거로 책 인쇄 대금을 부풀려 오 작가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수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태 씨는 돈을 끌어오기 위해 모친 출판사 자금까지 손을 대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태 씨는 당시 모친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팀장 또는 실장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관리자급 역할을 맡고 있었다.

A 씨는 국방부와 아무 관련이 없는 평범한 20대 대학생이었다. 처음에는 "그 사무관이 누군지도 모른다"며 태 씨의 요구를 거절했지만 태 씨는 집요했다. 태 씨는 A 씨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자세한 '대본'까지 써서 보냈다.

지난 3년 가까이 줄곧 태 씨에게 투자금 수천만 원을 맡겨놓았던 A 씨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태 씨의 말을 믿고 오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시키는 대로 말했다. 예상 질문에 대한 추가 답변까지 모두 태 씨의 지시로 이뤄졌다.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던 태 씨의 말과 달리 A 씨는 태 씨의 사기 혐의에 연루돼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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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연루된 사람은 A 씨 외에도 더 있었다. 태 씨는 과거 출판사와 용역 계약을 맺었던 영상 촬영·편집자 B 씨에게 출판사 명의 계좌에서 B 씨 계좌로 총 3억여 원을 이체한 뒤 그대로 자신의 개인 계좌로 돈을 보낼 것을 요구했다.

B 씨는 "원래 거래했던 회사니까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며 "태 씨가 가족끼리 다 얘기된 것이라고 하니 아무 생각 없이 전달했다"고 말했다.

당시 태 씨는 B 씨에게 유튜브 채널 영상 제작을 맡길 수 있다고 귀띔했다고 한다. 태 처장이 지난 22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효용을 다한 '태영호TV' 채널을 새로 인수해 꾸린다는 것이다. B 씨로서는 태 씨가 중요한 사업 파트너인 셈이었다.

B 씨는 지난 3일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해명을 요구하는 B 씨에게 태 씨는 "아버지가 공직자이고 탈북민이다 보니 계좌나 모든 움직임이 다 (정부에) 보고되고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별일 아니다"라고 안심시켰다.

이 밖에도 A 씨와 B 씨는 태 씨에게 개인적으로 투자하거나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해 경제적 곤경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대구 강북경찰서에 "태 씨로부터 약 47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진정서를 제출했고, 지난 26일 피해자로 첫 조사를 받았다.

B 씨는 지난달 31일 "급전이 필요하니 빌려주면 금방 갚겠다"는 태 씨의 요구로 수중에 있던 900만 원을 빌려줬다고 주장했다. 이후 태 씨가 잠적하자 B 씨는 태 씨를 상대로 지난 28일 지급명령을 신청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태 처장은 지난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제 아들과 관련해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점에 대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제 아들이 해당 사건과 관련해 성실한 자세로 수사에 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