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자고 일한 '배달 달인'이 부자보다 나은 점[이승환의 노캡]

'월 1200만 원 수익' 전윤배 씨 교통사고로 별세
'전국 수익 1위' 성과 보다 그에게 주목해야 할 것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지난 6월 SBS '생활의 달인'에 소개됐던 당시 전윤배 씨(해당 프로그램 갈무리)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최고의 배달 음식은 빨리 온 음식이다. 일요일인 1일 오전 6시 59분 스팸 김치볶음밥(김볶)을 주문했더니 20여분 만에 집 현관문 벨이 울렸다. 음식은 영수증이 붙은 하얀색 비닐봉지 안에 담겨 있었다. 김볶은 붉게 얼룩진 스팸과 진득한 김치의 조화가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온기를 풍겼다. '예정된 시간보다 19분 일찍 도착했다'는 알림이 배달 앱 화면에 떠 있었다.

배달 음식은 바쁜 사회인에게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을 한다. 배달 음식을 먹고 잔반과 플라스틱 용기를 치우는 데 보통 20분을 넘기지 않는다. 이날 스팸 김볶을 소화하고 뒤처리한 다음 근무지로 출근하기까지 총 1시간 7분이 걸렸다. 이후 4시간 30분이 지났는데도 허기짐을 느끼지 않고 있다. 그 덕분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전국 수익 1위' 배달 기사였던 고 전윤배 씨(41)의 철학도 '빨리'였다. 한 달 평균 수입이 1200만 원이었다는 전 씨는 오전 9시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일했다. 주 활동지는 인천국제송도도시였다. 그는 하루 15~17시간 동안 110~120건을 배달했다고 한다.

배차 요청 알림이 휴대전화 앱에 도착하면 전 씨는 본인과 가장 가까운 지역 주문 2~3건을 묶어 차례로 배달했다. 가까운 지역과 먼 지역 구분 없이 배달 요청이 들어오는 족족 수락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랐다. 인근 지역 배달을 1순위로 삼아 선별해 신속히 배달하면서 수수료 수익을 빠르게 늘리는 전략이었다. 그렇게 해야 "시간 낭비 없이 (음식 주문 장소로) 갈 수 있다"(SBS '생활의 달인' 인터뷰에서 전 씨가 한 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초인적인 속도가 가능했던 걸까. 전 씨는 일에 집중하고자 술을 끊었다고 한다. 식사는 퇴근 후 새벽 1~2시에 한 끼만 했다고 한다. 뇌종양·백내장·우울증을 앓던 전 씨는 뇌압 상승 방지 약물 등 하루 30알 이상을 복용하면서까지 일을 했다. 하루 5시간 정도만 잤던 그는 "잠은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며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 배달에 할애했다.

그는 오토바이 거치대를 개조해 휴대전화 주변을 에워싸게 했다. 혹시나 자외선에 노출돼 휴대전화 작동에 문제가 생길까 봐 이렇게 한 것이다. 배달 요청 알림이 뜨는 휴대전화를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반면 그의 팔뚝은 쏟아지는 자외선을 받아 검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수익' 때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전 씨의 업무 처리 속도와 성과 지표는, 일을 사랑했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전인미답의 영역이다. 그의 동료들도 "배달 기사로서 전 씨의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떠올렸다. 전 씨는 "배달 기사에 대한 편견을 없애겠다"고도 했다. 하루 5시간 이상 수면하는 부자 가운데 그처럼 일에 진심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을 것이다.

모든 죽음은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이다. 그의 죽음은 통계상 '사망자 1명'으로 기록되겠지만 개별적인 서사는 남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전 씨는 사업 실패 후 배달업에 뛰어들어 가족과 아이를 생각하며 성실히 일한 가장이었다. 지난달 31일 오후 배달하던 도중 신호 위반 차와 충돌해 숨진 전 씨의 소식에 "너무나 안타깝다" "삶의 모범이 되는 분" "배달 기사들이 달리 보인다"는 추모 물결이 온라인에서 일고 있다.

전 씨는 바람대로 '편견'의 벽에 균열을 일으키고 비로소 영면에 들어갔다. 다음 생에는 아프지 않고 사고 위험 없이 마음껏 달리길…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