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매트' 위에 떨어졌지만 사망…'최후의 보루' 믿음 흔들

'부천 화재' 에어매트 제 역할 못해…이례적 사고에 의혹 증폭
전문가 "정부·지자체, 에어매트 사용법 교육·훈련 필요"

22일 오후 7시39분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탈출용 에어매트를 설치하고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독자제공) 2024.8.23/뉴스1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경기 부천 호텔 화재' 사고 당시 공기 안전매트(에어매트)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생명을 구해 줄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에어매트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서 앞으로 누가 에어매트에 몸을 던지겠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사고에서 남녀 투숙객은 에어매트를 '생명매트'라 믿고 몸을 내던졌다. 하지만 여성 투숙객은 튕겨 나갔고 에어매트가 뒤집히면서 뒤따라 뛰어내린 남성 역시 사망했다. 에어매트 전복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이 나오면서 에어매트 설치 오류, 유효 기간이 지난 매트 사용 등 각종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화재 피하려던 두 남녀, 에어매트 추락사 참변

24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2일 오후 7시34분쯤 경기 부천시 원미구 중동의 전체 9층 건물의 호텔 7층 객실(810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같은 층에 머물던 투숙객 2명은 불길을 피하고자 소방이 설치한 에어매트로 뛰어내렸다가 그만 목숨을 잃었다.

앞서 부천소방서는 화재 신고 접수 4분 만인 오후 7시43분쯤 현장에 도착해 5분 뒤인 7시 48분 호텔 바깥에 에어매트를 설치했다. 이 매트는 가로 7.5m·세로 4.5m·높이 3m 크기로 10층 높이 이하에서 뛰어내릴 수 있도록 제작됐다. 무게는 공기가 주입되지 않은 상태 기준 126㎏로 알려져 있다.

에어매트가 설치되고 7분 뒤인 오후 7시55분쯤 여성이 먼저 몸을 던졌는데 매트 중앙 아닌 가장자리 쪽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에어매트는 반동에 의해 뒤집혔다. 원상태로 돌려놓기도 전에 뛰어내린 남성은 그대로 바닥에 추락했다. 이들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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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매트 전복 '이례적'…설치 잘못? 유효기간 10년 지난 탓?

전문가들은 에어매트가 뒤집히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복 원인에 대해서는 자세한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매트를 제대로 설치했는지, 유효기간이 지난 매트를 사용한 탓인지 등에 대한 의혹이 나오고 있다. 해당 매트는 2006년 지급됐는데 사용 가능 기한은 최대 7년으로 알려져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 교수는 <뉴스1>에 "에어매트가 뒤집어지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잘 뒤집어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공기압이 적정 이상으로 과도하게 주입됐다거나 에어매트 자체 불량으로 압력을 균일하게 유지하지 못할 경우 (외부 충격을 받으면) 뒤집어질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 교수 역시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아서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이렇게 매트 자체가 뒤집어지는 상황은 정말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소방대원들이 에어매트를 잡고 있어야 한다'와 같은 매트 전복에 대비하기 위한 규정들이 없다는 점을 들며 "자주 발생하는 사고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상돈 부천소방서 화재예방과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에어매트가 잘못 설치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처음에는 에어매트가 정상적으로 펼쳐져 있었다"며 "피해자들이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뒤집혔다"고 해명했다.

22일 오후 7시39분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4.8.2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에어매트의 배신?…정부·지자체 사용법 교육 필요

에어매트에 떨어지면 목숨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전문가들은 사용에 주의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에어매트는 피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피치 못하게 사용되는 기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선제적으로 시민 대상 에어매트 사용법에 대해 교육·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에어매트는 완전하게 안전을 담보하면서 피난할 수 있는 기구가 아니다"면서 "절대적인 안전을 바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화기, 완강기 등에 대한 교육은 있지만 에어매트 낙하 방법 교육은 아무도 해주지 않고 관심도 없다"고 지적했다.

공 교수 역시 "에어매트는 아주 안전한 기구가 아니라서 어느 정도 부상을 고려해야 한다"며 "제대로 뛰어내린다고 하더라도 부상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에어매트 사용법에 대해 정부나 지자체에서 한 번도 알려준 적이 없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보다 적극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총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7명은 모두 내국인으로 △20대 남성 1명·여성 2명 △30대 남성 2명 △40대 여성 1명 △50대 남성 1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으로 옮겨진 부상자는 12명 중 10명은 현재 퇴원했고 2명만 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younm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