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려주면 이사로 채용" 6억원 사기치다 걸린 병원재단 父子

[사건의 재구성]병원 운영하던 부자, 경영난에 시달리자 범행 계획
재판부 "편취금 상당수 범행 운행에 쓴 점 참작"…2심서 일부 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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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운영자금을 빌려주면 병원 이사로 취임시켜 줄게."

2019년 1월 경남 김해의 한 병원 재단 이사장 사무실. A 씨 등 2명에게 은밀한 제안이 다가왔다. 그 말을 믿은 이들은 13회에 걸쳐 6억8000여만 원을 병원 재단 명의의 계좌에 송금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23년 8월. 각각 병원 행정원장과 재단 이사장으로 근무하던 부자(父子)가 재판에서 각각 3년 6개월,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A 씨 등 2명이 돈을 빌려준 이들이었다. 이들은 무슨 이유로 재판장에 서게 됐을까.

아버지 안 모 씨(69)와 아들 안 모 씨(40)는 2016년 7월부터 2019년 9월까지 경남 김해의 한 병원에서 각각 행정원장과 재단 이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해당 병원은 2016년부터 운영난으로 인한 영업손실이 발생해 2018년엔 자본잠식 상태에 이를 정도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2018년 운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신관을 증축하려 했지만 금융기관의 PF 자금 대출이 무산되는 등 정식 대출을 통해 돈을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은 결국 변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숨긴 채 병원 이사직 등을 걸고 돈을 편취하기로 마음먹었다.

병원 운영자금 3억원을 빌려주면 병원 이사직을 주고 월 500만원의 급여와 200만원 한도의 법인 카드를 주겠다는 미끼를 내세웠다. 주위 사람들을 유혹해 돈을 빼돌린 뒤, 이 돈으로 '돌려막기'식 운영을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같은 수법으로 총 6억8000만원의 현금이 이들 부자의 손에 들어왔다.

부자는 예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1억8500만원을 편취한 전적이 있었다. 2016년 10월. 평소 알고 지내던 약사 B 씨에게 병원 운영 자금이 필요하다며 4억8500만원을 빌린 이들은 그 대가로 B 씨에게 1억 8500만원 상당의 지분의 아파트 2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 줬다.

하지만 2년 뒤 이들 부자는 B 씨에게 근저당권을 말소해 달라고 요구했다. 근저당권 말소 후 부동산담보 대출을 받아 병원 운영자금으로 쓴 뒤 다시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겠다는 이유에서였다. B 씨는 이들 부자의 말을 믿고 근저당권을 해제해 줬지만, 당시에도에도 두 사람은 돈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아들 안 모 씨는 이외에도 자기 아내와 어머니가 병원 사무실에서 근무한 것처럼 속여 급여 명목으로 총 7091만6250만원을 빼돌리기도 했다. 이들이 편취한 돈의 대부분은 밀린 직원 급여를 주는 등 병원 운영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부자는 형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서울서부지법 제1형사부는 아버지 안 모 씨에게 징역 3년을, 아들 안 모 씨에게 징역 2년을 각각 선고하면서 1심보다 감형된 형을 내렸다. 범행 대부분은 이들 부자가 병원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려다 발생해 사기에 대한 확정적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웠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피해자 일부의 경우 병원 재정 상태가 이미 악화했음을 알고 있음에도 피고인의 말만 믿고 대여를 계속하는 등 손해를 키운 측면이 있다고도 판단했다. 다만 범행일로부터 5년이 지난 2심 선고 시점까지 변제 등 실질적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점 또한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