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단'과 '낙태' 무엇이 다를까…MZ후배의 일침[이승환의 노캡]

'낙태죄 폐지된 시대, 여전히 숨 죽여 임신 중단하는 여성들'
'1㎝ 약 삼킨 여자들' 보도로 미프진 불법 판매 고발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낙태죄 없는 2021년!' 3.8 세계 여성의 날 맞이 기자회견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제도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1.3.8/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낙태'란 단어를 기사에 쓰면 안 됩니다."

임신 중지 약물 '미프진'의 온라인상 불법 판매를 고발하는 '1㎝ 약 삼킨 여자들' 기획을 논의하던 중 한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후배는 '낙태'란 단어가 기획의 취지와 배치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미프진 거래 실태를 다루더라도 근본적으로는 불법 거래와 약물 부작용을 감수하며 임신 중단을 선택해야 하는 여성들의 실존을 조명하는 것이 취지다. 정부와 국회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후배의 지적을 듣고 뜨끔했다. 평소 보도 이해당사자들을 고려해 세밀하게 단어를 골라 사용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태라는 단어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었다. '태아를 떨어뜨린다'는 부정적인 가치판단이 포함돼 낙태는 불법적인 임신 중절을 의미한다는 것이 후배의 설명이었다. 낙태 대신 임신 중단 또는 임신 중지를 쓰자는 것이다.

임신 중단에 관한 판단하기 전, 한 가지 살펴볼 것이 있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사실이다. 헌법불합치 결정 후 2020년까지 낙태죄 조항과 관련한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2021년 1월 1일 오전 0시부터 임신 중지는 비범죄했고 낙태죄는 사라졌다.

다만 모자보건법에 따라 임신 24주 이상의 여성이 임신 중단을 할 경우 불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 헌법과 법률, 시행령에 근거해 사견임을 전제하고 말하자면 임신 24주 이내는 임신 중지로, 24주 이상은 낙태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1㎝ 약 삼킨 여자들'이 다루는 사례는 24주 이내 여성들의 임신 중단이다. 반면 임신 36주차 유튜버가 태아를 '낙태'해 살인 혐의로 입건됐다는 기사를 쓸 때는 '낙태'라고 표현했다. 낙태죄는 사라졌지만 모자보건법에 따라 24주 이상의 임신 중단은 불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신 중단'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는 아직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달 '1㎝ 약 삼킨 여자들' 기획 기사들이 잇달아 보도되자 비난 댓글이 적지 않게 달렸다. 대부분 "왜 낙태라 쓰지 않고 임신 중지 또는 임신 중단이라고 표현하냐"는 내용이었다. 일부 누리꾼은 "기자가 페미니스트냐"고도 했다. 아무리 필자가 팀장이라지만 기자 개개인의 성향을 알기도 어렵고 물어서도 안 된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 낙태란 단어를 쓰지 않은 것은 낙태죄가 사라진 시대정신과 헌재의 결정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번 기획에 참여한 서상혁 김예원 홍유진 장성희 기자는 1990년대 초반~후반생으로 이른바 'MZ세대'다. 누가 MZ세대는 '칼퇴근'을 지향한다고 했을까. 이들은 두 달 가까이 기획 취재에 끈질기게 매달렸다. 초과근무와 휴일 근무를 자처하면서 '낙태죄가 폐지된 시대, 여전히 숨죽여 임신 중단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추적했다.

오는 10월 아내가 출산하는 서상혁 기자는 기획 초기부터 보도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김예원 기자는 임신 중단 여성들의 사연을 섬세한 문장에 담아 내러티브 저널리즘(문학적 저널리즘)의 모범을 보여줬다. 지난해 입사한 홍유진 기자와 장성희 기자는 전국 곳곳을 발로 뛰며 미프진 불법 판매자와 임신 중단 여성을 직접 취재했다. 경찰은 <뉴스1> 보도 후 미프진 불법 판매자들에 대한 입건 전 조사(내사)를 검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획 제목을 '1㎝ 약 삼킨 여자들'로 정한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삼킨다'는 단어는 중의적이다. 강제당했다는 의미와 극적으로 선택했다는 의미를 동시에 품는다. '독약을 삼켰다'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임신 중단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내몰려 음지에서 지름 1㎝의 미프진을 구매하는 여성들의 지난한 현실을 함축한 표현이 '삼킨다'였다.

온라인에서 불법 거래되는 미프진은 정품 여부를 확인하기 쉽지 않아 부작용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럼에도 미프진을 삼킬 수밖에 없는 여성들에게, 이번 기획 기사들이 마침내 가닿아 잠시라도 위안과 위로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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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