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낭만 시절 끝, 마지막 협객"…신상현 빈소 도열한 정장 무리

'영화 아닌 현실'…거구의 남성들 일렬로 '90도 인사'
목사·스님도 조문 '눈길'…"약자 못살게 굴면 교통정리"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신상현 씨의 빈소에 정장을 입은 남성들이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2024.08.11 ⓒ 뉴스1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임여익 기자 = "조심히 가십시오!"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은 원로 주먹 신상현 씨의 빈소를 찾은 100여 명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검은 정장을 위아래로 차려입은 거구의 남성 30여 명은 장례식장 입구 앞에 일렬로 서서 떠나는 조문객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신 씨는 1970년대 명동 일대에서 종로 김두한, 동대문의 이정재 등과 어깨를 겨루던 이른바 '원로 주먹'이다. 한국 전쟁 당시 대구 특무부대에서 1등 상사로 근무해 '신 상사'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1970년대까지 명동 일대에서 활동해 '명동 황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관련 일화로는 '사보이호텔 습격 사건'이 유명하다. 1975년 1월 명동 사보이호텔에서 신년회를 진행하던 신상사파가 오종철파의 행동대장 조양은으로부터 급습받은 사건이다. 해당 사건 이후 신 씨는 일본 야쿠자 조직과 관광호텔 카지노 등을 사업을 진행하다 은퇴 후엔 외제 차 사업을 했다.

이날 빈소 입구엔 근조화환이 끊임없이 늘어서며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이었다. 화환 수가 많아지자 장례식장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화환을 교체하며 정리하기도 했다. 현장엔 오세훈 서울시장 등 각계인사가 조기나 화환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고인을 향해 "시대를 대표하는 마지막 협객 같은 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고인과 50년 넘게 알고 지냈다는 이종남 씨는 "고인은 의리도, 낭만도 있던 야인시대 시절 남은 마지막분인데 그 시절이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행동대장'으로 고인과 같은 조직에 몸담았다고 밝힌 김철 목사는 "20년 넘게 모신 분"이라며 "그분 뜻을 받들어 1984년에 제가 조직을 나와 신학 공부 후 목사가 됐다"고 추모의 뜻을 밝혔다.

승복을 입고 빈소를 찾은 묘허스님은 "강한 사람들이 약자를 못살게 굴 때마다 교통 정리를 많이 해 주셨다"며 "장애인 관련 봉사활동도 많이 하셔서 그 인연으로 오늘 빈소를 찾았다"고 말했다.

신 씨의 후계자이자 장례위원장을 맡은 홍인수 씨는 "빈소를 찾은 사람 중 젊은 사람이 반 이상일 정도로 세대를 아우르는 리더십이 있는 분"이라며 "어제 1000명 넘게 빈소를 찾았고 오늘도 오후 6시 기준 500명은 넘는 사람들이 조문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찰은 서울경찰청 및 송파경찰서 소속 50여 명의 사복경찰을 장례식장 인근에 배치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발인은 12일 오후 1시 30분이다.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신상현 씨의 빈소. 2024.08.11 ⓒ 뉴스1 임여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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