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다가 퍼붓다가, 지쳐가는 시민…"입추 매직? 올해는 없나봐요"

35도 무더위에 '도깨비' 소나기…"점심때 산 우산만 서너 개"
기상청 "중첩된 고기압 영향, 열흘 넘게 무더위 이어질 것"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저마다 양산을 펼치고 더위를 피하고 있다. 2024.08.05/뉴스1 ⓒ News1 김종훈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임여익 기자 = "입추(立秋) 매직? 올해는 힘들 것 같아요."

서울 양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 모 씨(29)는 매일 달력을 보는 게 습관이 됐다. 폭염과 소나기가 오락가락 찾아오며 습도 높은 무더위가 이어지자 '입추'(8월7일)와 '처서'(8월22일)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김 씨는 "30분만 외출해도 나갈 때와 들어올 때의 날씨가 다르니 선풍기, 우양산 등 짐만 늘어나 번거롭다. 최근 편의점 등에서 급히 구매한 우산만 서너 개"라며 "올해도 친구들과 입추, 처서만 기다렸는데 오늘도 더운 걸 보니 '마법'을 기대하긴 그른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전국적으로 폭염과 폭우가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갈아 찾아오며 무더위 속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기상청은 낮 최고 기온이 33도 안팎을 넘나드는 이런 무더위가 중첩된 고기압의 영향으로 열흘 넘게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더위가 이어진 6일 서울 용산구 쪽방촌에서 한 주민이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24.8.6/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6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공덕역 부근. 길거리엔 미니 선풍기를 들고 땀을 식히거나 토시, 햇빛 가리개를 차는 등 따가운 햇볕을 피하려는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이날 오전 9~10시쯤 예보된 소나기를 의식한 듯 우산을 들고 거리를 오갔다.

공덕역 인근에서 직장을 다닌다고 밝힌 김정욱 씨(31)는 "회사 분위기상 긴팔 셔츠를 입을 수밖에 없어 너무 힘들다"며 "올여름은 하도 더우니까 '처서 매직'이 오면 변화가 더 크게 느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입추 매직'과 '처서 매직'은 가을 절기에 해당하는 입추와 처서에 각각 영어단어 '매직'(magic)을 합성한 단어다. 해당 절기가 다가오면 무더위가 가시고 여름이 가신다는 뜻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나마 구름이 껴서 강아지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나왔다는 구승연 씨(43)는 "요새는 해가 져도 습하고 더워서 강아지 산책을 못 시켰는데, 오늘은 그나마 구름도 좀 있어서 더 더워지기 전에 강아지를 데리고 나왔다"며 "날씨가 하도 오락가락하니 일기예보도 수시로 들어가서 찾아본다. 날씨 검색이 습관화됐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정 모 씨(29)는 "최근 회사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나오느라 집에 늦게 도착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한 번 비가 오면 폭우가 쏟아지니 매일 집에 가서 신발을 말리는 게 일이다. 트루먼쇼처럼 촬영팀이 비를 통제하는 것 같이 많이 온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민들은 오락가락하는 날씨로부터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실내에 머물거나 출퇴근 시엔 집에 약하게 에어컨을 틀어놓는 등 나름의 대비책을 강구하는 모습이었다. 직장인 김 씨는 "집에서 하루 종일 에어컨 켜기가 부담스러워서 일부러 시원한 곳을 찾아간다"며 "더위를 식히려 퇴근 후 헬스장도 매일 가고, 동네 도서관도 주말마다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로 출퇴근한다고 밝힌 직장인 김지현 씨(26)는 "인근에 맛집이 많아서 점심시간 때는 늘 나가서 먹었는데, 이번 주엔 오후에 비가 갑자기 쏟아지다 보니 최대한 구내식당을 이용하거나 다 같이 배달을 시켜 먹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 모 씨는 "원래 집을 나서면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뒀는데 요즘엔 그렇게 하면 집 안 온도가 30도를 넘기기 일쑤다"라며 "온도가 높아도 소나기 때문에 벽지가 우는 등 피해가 생겨 약하게 에어컨을 틀어놓고 나오는데 요즘 전기세도 올라서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