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살인 땐 안 그랬는데"…청소노동자 사망 후 혐오로 멍든 이들

'숭례문 지하보도 살인사건'으로 취약계층 혐오성 댓글 난무
"편견 확대 재생산 멈춰야…사회의 무책임함 보여주는 것"

동자동 쪽방촌 주민 김 모 씨가 자신의 방으로 향하고 있다. 2024.08.03/뉴스1 ⓒ 뉴스1 김민재 기자

(서울=뉴스1) 김민수 김민재 기자 = "노숙인 개인 때문에 쪽방촌 주민들 싸잡아서 욕먹는 반응이 너무 많아서..."

한 복지단체 관계자는 3일 <뉴스1>에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너무 화가 난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가 언급한 '기사들'은 70대 남성 A 씨가 60대 여성 환경미화원을 흉기로 숨지게 한 사건을 다루는 보도였다. 사건 발생 시점 및 장소는 2일 오전 5시 10시쯤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지하보도였다.

A 씨는 범행 후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으로 도주했다가 체포됐다. 과거 노숙 생활을 했던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동자동의 한 여인숙에서 거주했다. 그의 범행은 정당화할 수 없으며 처벌이 마땅하다는 여론이 크다. 그러나 이 사건 하나로 노숙인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싸잡아 비난하는 일부의 온라인 커뮤니티 여론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취약계층을 향한 맹목적인 혐오는 이들을 더욱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사회 구조적 문제 해결이 아닌 취약계층 배제를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수능 만점 의대생이 여자친구를 살해한 사건이 보도됐을 때 '의대생 엘리트 집단이 그런 범죄를 절대 저지를 리 없는데 의아하다'는 프레임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엘리트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지'라는 시각은 결국 '저렇게 이상하게 생활하는 홈리스들은 우범자야'라는 시각과 맞닿아 있다"고 꼬집었다.

혐오로 멍들고 있는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은 본격 여름철을 맞아 폭염과 사투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온이 34도까지 치솟은 2일 오후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에서 만난 김선학 씨(남·50)는 "여름이 시작됐지만 쿨링포그(안개형 냉각수)는 도대체 언제 설치되냐"며 "새꿈어린이공원은 쪽방촌 주민들이 자주 와서 쉬는 공간인데, 쿨링포그가 없어져 버렸으니 힘들다"고 토로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자주 휴식을 취하곤 하는 길가의 버려진 의자들. 2024.08.03/뉴스1 ⓒ 뉴스1 김민재 기자

동자동 쪽방촌에서 10년째 거주 중인 김 모 씨(50대·남)는 자신의 방을 가리키며 "저곳에 누워있으면 잠이 오질 않는다"며 "주인이 전기세 때문에 에어컨도 못 틀게 한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거리에 버려진 의자를 바라보며 "밤에 결국 견딜 수밖에 없고 그나마 저기 앉아서 졸거나 바람을 쐬는 게 전부"라고 힘없이 말했다.

쪽방촌 일부 주민과 노숙인은 인근 지하보도나 지하철로 이동하고 있었다.

노숙인들이 불확실한 상황에 놓인 만큼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지만 그들 역시 범죄 피해에 노출된 약자라는 지적도 많다.

전문가들은 취약계층 혐오가 확산할수록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를 더욱 가리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허창덕 영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평상시 노숙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 문제"라며 "현상에 대한 예방에 에너지를 기울여야 할 시점에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여론 소모를 할 필요는 없다"고 꼬집었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노숙인이 위험하며, 사회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는 프레임 자체가 그 사회가 얼마나 무책임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kxmxs41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