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이어도 운전자에겐 사과해야 할 의무가 있다[기자의눈]

2일 새벽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교차로 교통사고 현장에서 과학수사대원들이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2024.7.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신은빈 기자 =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9명이 목숨을 잃고 6명이 다쳤다. 참극은 지난 1일 오후 9시 27분쯤, 60대 후반의 운전자 A 씨가 횡단보도가 있는 인도로 돌진해 신호를 기다리던 보행자들을 덮치며 일어났다. A 씨는 사고 직후 차량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기자도 소식을 듣고 급하게 현장으로 달려가 목격자를 찾아다녔다. 요란한 구급차 사이렌 소리와 흥분한 목격자의 목소리가 뒤엉켰다. 하지만 이 한마디는 너무나 또렷하게 들렸다.

"급발진은 백 프로 아니에요." 사고를 목격했다는 한 중년 남성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급발진이면 차량이 끝까지 박아야 했는데 해당 차량은 어디 박지 않은 상태로 횡단보도 앞에 멈췄다"며 언성을 높였다. 당시 사고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도 차량은 사고 직후 속도를 줄이며 멈춰섰다. 남성은 "조수석에 탄 아내 B 씨가 운전자 A 씨만 챙겼다"며 "피해자 구조를 조금만 빨리 했더라면 한 분이라도 살렸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급발진이든 아니든 A 씨에게 적용되는 혐의는 같다. 경찰은 사망 사고를 발생시킨 A 씨를 이미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의 3조 1항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 다수의 사망 사고를 낸 이상 A 씨의 과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말 목격자의 말처럼 급발진이 아니라면 A 씨의 과실은 더욱 중해진다. 첫째는 운전 미숙이다. 늘 행인으로 붐비던 시청역 앞 세종대로에서 무려 15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운전자의 고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200m가량 거리를 역주행해 보행자들을 덮친 일은 그저 실수로 넘길 수 없다.

둘째는 미흡한 구호조치다. 동승자인 아내 B 씨는 "경황이 없었다"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해명했다. 물론 정신을 차리기 힘들 만큼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다만 사고를 낸 운전자가 피해자를 신속히 구조하지 않은 사실은 엄중히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B 씨가 갈비뼈 통증을 호소하는 남편을 챙길 때, 도로에 쓰러진 피해자들을 함께 살피기라도 했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인 A 씨는 아직까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고 원인이 급발진이라고 해서 9명이나 사망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급발진 여부는 나중에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전에 진심 어린 사과가 먼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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