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수위 높다고 동물 학대 못 막아"…양형기준 말고 '이것'도 필요하다

양형위, 동물 학대 양형 기준 설정 합의…내년 3월 적용
"동물 소유권 박탈·분리 인프라 필요…민법도 개정해야"

한국동물보호연합 소속 회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물학대 강력처벌 촉구‘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2017.8.15/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대법원이 동물 학대 처벌의 구체적 양형 기준을 마련하기로 하면서 이번 기회에 양형 기준을 넘어 더욱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20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최근 동물 학대 범죄의 양형 기준 설정에 합의했다. 동물을 죽이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와 동물에게 고통 및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구분해 전자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후자에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 범위에서 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식당에서 개를 잔혹하게 도살하거나 길고양이 살생용 먹이를 온라인 공간에 인증하는 등 공분을 샀던 학대 행위에 합당한 형량이 선고될 것으로 보인다.

양형위는 11월까지 가중·감경 요소의 구체적 기준을 마련한 뒤 2025년 3월 확정할 방침이다.

양형위의 이 같은 움직임은 양형 기준의 부재로 동물을 학대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경찰에 접수된 신고는 2010년 69건에서 2022년 1237건으로 20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유사한 학대 행위라도 벌금형과 징역형 등 선고 결과가 제각각이어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을 맞아 정당과 후보들에게 '동물복지' 정책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2024.3.5/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전문가들은 양형 기준이 마련되면 가해자에 대한 체계적 선고가 가능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동물 학대를 근절하기에는 미흡하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양형 기준을 4단계로, 피해 수준을 3가지로 분류한 영국을 예로 들면서 더욱 적극적이고 세부적인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경찰학회보에 실린 '해외 동물 학대 처벌 기준과 양형기준을 통해 살펴본 우리나라 동물 학대 양형 기준 방향성 논의'에 따르면 영국은 동물복지법에 따라 중대 동물 학대범은 동물 소유권을 박탈할 수 있으며 이들에게 최대 5년의 징역형과 금액 한도가 없는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영국은 동물 학대 행위에 대한 구체적 양형 기준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는 온라인 공간에서 동물 학대를 인증하고 전파하는 형태의 범죄가 반복되고 있는데 이런 경우 가중 요소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 동물의 사후 관리를 위한 인프라 확충 및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주현 변호사(동물의권리를옹호하는변호사들)는 "학대받은 동물을 지자체 등에서 격리할 수 있다는 법 규정이 있지만 적극적 조치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담당 공무원의 자발적 판단에 우선 의존하기도 하고 동물 관리에 들어가는 추가 비용 등을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고 명시한 민법 개정안의 통과도 필요하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선 동물을 물건의 범주에서 분리하고 인간과 별도의 권리를 지닌다고 인정하는데 이런 인식이 국내 법에 반영되면 학대 및 사고를 당한 동물의 치료비 등을 법적으로 요구하는 과정에서 단순 수리비 이상의 청구가 가능해진다.

해당 내용을 담은 개정안은 12일 박희승 민주당 의원의 대표 발의로 법사위에 회부됐다. 전진경 동물권행동카라(KARA) 대표는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다 보니 이제껏 동물에 대한 소유권이 동물의 생명권보다 우선했다"며 "민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동물에 대한 개선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