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N번방 그 후 위장수사 확대 추진…늘어나는 현장 책임부담

경찰 "위장수사 범위 미성년자→성인 범죄 확대" 국회 보고
과거 관련 개정 무산…"신분 보호 장치 마련, 수사 기간 자율적으로"

서울대에서 피해자가 최소 61명에 달하는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21일 성폭력처벌법 위반(허위영상물 편집·반포) 등 혐의로 30대 남성 A 씨와 B 씨를 검거해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2024.5.21/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임윤지 기자 = 경찰이 디지털 성범죄 '위장 수사' 범위를 미성년자 범죄 한정에서 성인 대상 범죄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책임 부담이 더 커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법적 근거 마련과 동시에 경찰 수사 환경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8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 20일 이른바 '서울대 N번방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후 '언더커버(Undercover)'로 불리는 신분 위장(또는 신분 비공개) 수사 확대 등의 대책 방향을 국회에 보고했다.

미성년자 등 일반여성들을 상대로 한 성착취 영상을 공유·판매한 N번방·박사방 등의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 위장 수사가 도입됐다. 2021년 9월 개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동청소년성보호법)에 근거가 마련됐다.

하지만 미성년자 대상 디지털 성범죄로 '위장 수사'의 범위가 제한됐다. '서울대 N번방'처럼 성인 여성이 대상인 범죄는 위장 수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사기관이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사이 서울대 N번방 사건의 피의자인 서울대 졸업생 박 모 씨(40)가 사실상 '민간인의 위장 수사'를 통해 검거됐다. 피해자들이 과거 N번방 사건을 드러낸 '추적단 불꽃' 활동가 원은지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원 씨가 2년 동안 공범인 척 피의자들에게 접촉을 시도해 신상을 특정한 것이다.

ⓒ News1 DB

위장 수사 확대 필요성에 대해 경찰과 전문가 모두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범죄가 지능화·점조직화되면서 위장 수사에 대한 합법적 근거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도 이같은 개정 움직임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한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2021년 11월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성폭력처벌법 일부 개정안에도 디지털 성범죄를 피해자가 성인인 범죄에 대해서도 위장 수사를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소위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으면서 3년 넘도록 국회에서 계류 중에 있다. 해당 법안은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오는 29일까지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개인정보보호 등 과도한 기본권 침해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사안의 긴급성과 잔혹성 등을 고려해 수사가 필요한 성범죄·마약범죄 등을 명확히 열거하는 식으로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며 "무고한 당사자를 보호하는 규정 등 절차적인 요건도 강화해 당사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설령 법제화가 된다고 해도 위장 수사 때 경찰 신분을 확실하게 보호할 적극적인 수사기법도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위장 수사가 제일 많이 쓰이는 미국과 캐나다는 땅이 넓고 다인종 국가이기 때문에 새로운 신분을 만든 경찰이 연고 없는 지역에 가서 수사하기 쉬운 환경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신분 노출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현장에서 부담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현재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굉장히 교묘하고 눈치가 빨라 경찰도 오랜 시간 공들여 위장해 수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곽 교수는 "또 범죄 사안별로 1~2년 이상 소요될 수도 있는 점을 고려해 현재 연장 없이 3개월로 한정한 수사 기간도 자체적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immun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