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단 불꽃 '아내 속옷' 미끼에 걸려든 서울대 N번방…경찰 왜 못했나

허위 신분 등 위장 수사,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만 가능
경찰 위장 수사 범위, 성인 대상 디지털 성범죄까지 확대해야

서울대에서 피해자가 최소 61명에 달하는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1일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30대 남성 A 씨와 B 씨를 검거해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 2024.5.21/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서울대 N번방' 주범 검거 과정에서 '추적단 불꽃'의 위장 잠입 성공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찰의 '위장 수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현행법상 경찰은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경우에만 위장 수사를 할 수 있다.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서울대 N번방 사건에서도 위장 수사가 가능했다면 범인을 좀 더 일찍 검거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서울대를 졸업한 박 모 씨(40)와 강 모 씨(31)를 성폭력처벌법상 허위 영상물 편집·반포 등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넘겼다. 박씨와 강 씨는 서울대 동문으로 일면식이 없는 사이였지만 주변인 사진을 활용해 합성 음란물을 제작 및 유포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박씨는 지난 2021년 7월부터 대학 동문 등 여성 48명의 사진을 나체 등에 합성 및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대 로스쿨 출신인 강 씨도 동문을 상대로 불법 합성물을 제작 후 이들의 신상정보를 박 씨에게 넘긴 혐의를 받는다. 박씨가 제작 및 유포한 음란물은 지금까지 각각 100여 건, 17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선 경찰서 4곳에선 일부 피해자가 개별적으로 고소한 내용을 토대로 수사했지만 피의자 특정에 실패해 수사 중지 및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12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지시로 재수사에 들어간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텔레그램에서 음란 사진 합성 및 유포자를 쫓다 신상 특정 과정에서 추적단 불꽃 소속 원은지 씨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원 씨는 '미모의 서울대 아내랑 결혼한 30대 남성' 신분으로 위장해 텔레그램에 잠입했다. 이때 경찰은 박 씨가 원 씨에게 신뢰의 증표로 아내와의 통화 등을 요구했을 때 여성 수사관이 대신 전화를 받는 등의 방식으로 원 씨와 공조했다. 의심을 푼 박 씨는 원 씨가 말한 장소에 숨겨진 속옷을 찾으러 왔다가 지난 4월 경찰에 붙잡혔다.

박씨의 신상을 특정하고 그를 검거할 수 있었던 배경엔 2022년 7월부터 디지털 성범죄 공범을 자처하며 2년 가까이 텔레그램으로 접촉을 시도한 원 씨가 큰 역할을 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원 씨의 추적을 보조하는 제한적 역할에 그쳐 비판을 받았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하지만 이는 위장 수사 범위에 제한을 두고 있는 현행법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청소년성보호법 등에 따르면 국내에선 위장 수사를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에 한정해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장 수사의 효율성은 여러 수치를 통해 확인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해당 법률이 시행된 2021년 9월24일 이후 2023년 상반기까지 진행된 위장 수사 중 신분비공개수사(경찰이 신분을 밝히지 않고 증거와 자료를 수집하는 수사)의 경우 검거율이 88.2%, 신분위장 수사(경찰이 가상의 신분 등으로 위장해 진행하는 수사)는 검거율이 94.7%에 달했다.

위장 수사 범위를 피해자가 성인 여성인 경우까지로 확대됐다면 경찰이 이번 서울대 N번방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고 보는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사건의 경우 초반 고소를 접수한 이들이 서울대 재학생으로 성인 여성이었고 수사 초기엔 아동 청소년 성 착취물 정황이 인지되지 않아 위장 수사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며 "위장 수사 범위가 성인까지 확대됐다면 좀 더 명확한 수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사방' 사건 피해자 공동변호인단 소속이었던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는 "조주빈 사건처럼 이번 '서울대 N번방'도 추적단이 몇 년간 행적을 쫓은 끝에 신원을 특정하고 검거할 수 있었다"며 "집요한 잠입, 위장 수사가 아니면 범인 검거가 어려운 디지털 성범죄 특성을 고려해 수사기관이 적극적 대처를 할 수 있도록 제한이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지난 2월 성 착취물 제작과 배포 등 성인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도 위장 수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및 입법 절차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22~2023년 사이버성폭력 사범 단속 결과 성인 피해자의 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할뿐더러 수사 초기엔 피해자의 미성년자 여부 확인이 어려운 만큼 수사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21대 국회 임기 종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고 여성가족부 등 관계 부처의 협조가 더딘 만큼 추진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수법도 교묘하고 해외 서버 기반 SNS는 추적도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사실상 위장 수사를 하지 않으면 범인 검거가 어렵다"며 "범죄 의지가 없는 사람을 유인해서 범죄를 유도하는 경우 등 기존 판례 등에서 인권 침해라 적시한 사례를 고려해 능동적인 입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