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명받는 '버닝썬'…마약범죄 2배 늘었지만 '버닝썬법' 줄폐기

지난해 마약 사범 1만7817명…2018년 대비 119.8% 증가
'버닝썬법' 국회 문턱 넘지 못해…"데이트 강간 약물 규제 강화해야"

집단 성폭행 혐의로 실형에 처해졌던 가수 정준영(35)이 지난 3월 19일 오전 전남 목포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고 있다. 2024.3.19/뉴스1 ⓒ News1 김태성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임윤지 기자 = 마약을 이용한 성범죄 실태를 보여준 '버닝썬 게이트'가 최근 BBC 다큐멘터리를 통해 재조명받고 있다. 그러나 사건이 드러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관련 대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버닝썬 사태 이후 다양한 대책과 법안이 쏟아졌지만, 이른바 '버닝썬법'으로 불리던 법안들은 계류 후 폐기 수순을 밟은 탓이다.

전문가들은 마약을 몰래 먹여 성범죄 등에 이용하는 타인 투약 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수사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마약 사범 검거 인원은 버닝썬 사태가 드러난 2019년 1만 411명에서 지난해 1만 7817명으로 71.1% 증가했다. 사건이 처음 드러난 2018년 8107명과 비교하면 119.8% 늘었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는 올해 마약 범죄가 지난해보다 약 13%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마약 범죄가 과거와 달리 특정 계층이나 범죄 집단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을 파고들 정도로 일상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8월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에서는 현직 경찰관이 마약 파티에 참여해 추락사하는 일이 벌어져 사회적 충격을 줬다. 해당 모임에 참여한 인원은 총 25명으로 이들은 비뇨기과 의사, 대기업 직원, 헬스 트레이너 등으로 확인됐다. 마약 공급은 이태원 클럽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조사돼 버닝썬 사태 이후에도 클럽 내 마약 유통이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지난해 4월에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마약 음료를 집중력 강화에 좋은 음료라고 속여 마시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타인에게 몰래 마약을 먹이는 범죄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셈이다.

박영덕 마약퇴치운동본부 센터장은 "과거에는 조직폭력배나 반사회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마약을 했다면 지금은 대학생, 주부, 회사원 등 사회인들이 마약을 하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며 마약 문제의 심각성을 토로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우리나라가 '마약 청정국'이라는 건 예전에 깨졌다"며 "경찰관까지 마약을 할 정도로 일상화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마약 범죄는 일상화되고 있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버닝썬 사태 직후인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타인 투약 사범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이른바 '버닝썬법' 발의가 이어졌지만 모두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지속해서 발의됐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2월 다른 사람의 의사에 반해 마약을 은밀하게 투약할 목적으로 제공한 사람에게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형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마약류관리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상 마약 소지·소유·관리·수수하는 경우에 대해서만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부여하고 있다.

아울러 마약을 이용한 성범죄를 더 강하게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 일부개정안도 발의됐다. 그러나 이 같은 법안들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를 코앞에 두고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이 같은 법안을 놓고 현행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타인 투약 이후 강간 등 2차 범죄가 일어나더라도 강간치상·강간추행치상죄 등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n번방에분노한사람들 등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2020년 7월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김학의, 버닝썬, n번방, 손정우 사건 등에 대해 미온적 판결이라며 사법부를 규탄하고 있다. 2020.7.12/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그러나 전문가들은 상해나 성범죄에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 음료에 마약을 탄 행위 자체로는 의도를 입증하기 어려워 별도 가중처벌이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는 '마약범죄 수사·기소·처벌에서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마약류 등의 타인 투약은 그 자체로도 피해자에게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줄 뿐 아니라,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한 채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자기 투약보다 강하게 처벌하자는 의견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다만 현행법 체계상 양형을 통해 가중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의도를 입증하기 어려운 타인 투약 미수를 제재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데이트 강간 약물 유통을 더욱 엄격하게 규제하자는 논의를 참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는 데이트 강간 약물을 별도로 지정해 특별 관리하고, 약물 이용 성범죄에 대해선 강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또 범정부 차원의 예방 및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미국에서는 '데이트강간 약물 금지법'을 통해 마약을 비롯해 '물뽕'으로 불리는 GHB 합성 약물을 이용하다 붙잡히면 최대 20년의 징역형, 단순 소지에 대해서도 3년 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부장검사 출신인 김중 법무법인 영동 대표 변호사는 "타인에게 마약을 몰래 먹여 중독시키는 건 사람의 인격을 공격하는 행위에 가까운 만큼 가중처벌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또 "급증하는 마약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에서 다각도로 크로스 체크할 수 있는 촘촘한 수사 시스템 갖추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센터장은 법적인 가중처벌과 더불어 재활에도 방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센터장은 "매년 마약 사범 검거에 집중하고 있지만 마약 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지고 있다"며 "마약 유통·판매책에 대한 검거나 처벌 강화와 별도로 치료나 재활에 대해서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K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