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도 없는 장례식"…또 음주운전에 50대 배달노동자 사망
도로 한쪽에 추모공간 마련…음주운전 처벌 강화 탄원서 제출
- 김민수 기자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목숨 내놓고 한다는 말을 자주 하더라"
14일 오전 서울 금천구 시흥 IC 인근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는 60대 후반 남성 A 씨는 잠시 말없이 도로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는 사고의 여파로 일부분이 사라진 중앙분리대를 가리키며 "음주 운전 차량 때문에 애꿎은 사람만 가버렸다"고 탄식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후 7시 50분쯤 서울 금천구 시흥 IC 인근에서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뒤따라오던 승용차 2대도 연쇄 추돌했다. 이 사고로 50대 배달노동자가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사고가 발생한 도로 인근에는 간소한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오징어땅콩 과자 한 봉지와 막걸리 한 병, 모자 그리고 조화 등으로 이루어진 추모 공간은 말없이 도로 방향을 향해 있었다. 동료 배달노동자들이 쉽게 장소를 발견할 수 있도록 고려한 배치였다.
A 씨는 "사망한 분이 처자식이 없다고 들었다"며 "주유소를 찾는 배달노동자들은 먹고살 수밖에 없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할 수밖에 없다더라"라고 안타까워했다.
비단 A 씨뿐만 아니라 거리 주변 상인들도 배달노동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분위기였다.
오토바이 상점을 운영하는 40대 B 씨는 "최근 당곡사거리에서도 배달노동자분이 사망하셨는데, 또 이런 일이 벌어져서 마음이 무겁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지난달 13일 오후 7시 32분쯤 관악구 당곡사거리 왕복 8차선 도로에서 20대 C 씨가 운전한 승용차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과속해 앞서가던 오토바이를 추돌하고 이어 차량 여러 대를 들이받는 등 2·3차 사고를 유발했다. 이 사고로 50대 배달노동자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 중 사망했다.
배달플랫폼노동조합에 따르면 최근 4월에만 3건의 배달노동자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B 씨는 마침 상점에서 수리를 마친 남성이 오토바이를 끌고 가게를 나서자 "조심히 타세요"라고 덕담을 건넸다.
시민들도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분향소를 힐끔거리며 쳐다보거나,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다. 한 50대 여성은 유심히 빈소를 보다가 뉴스를 찾아보고선 "어쩌면 좋아"라고 탄식했다.
김정훈 배달플랫폼노동조합 남서울지부장은 "사무실에서 얼굴 봤던 형님인데 이제 갑자기 돌아가셔서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라며 "음주 운전에 대해서 엄한 처벌을 촉구하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무엇보다도 사망한 50대 배달노동자의 휴대전화에 암호가 걸려있어 영정사진 없이 장례를 치렀다는 소식에 동료들이 더 가슴 아파하고 있다고 김 지부장은 덧붙였다.
동료들의 요청에 따라 배달플랫폼노동조합은 음주 운전자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탄원서를 받을 예정이다.
이날 오후 4시 30분 동료들은 추모 공간에 모여 고인을 위한 추모제를 가질 예정이다.
kxmxs41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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