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 4000만원 사기당하고 계좌 정지 신청했다 전과자 됐네요"
[사기지옥]③계좌지급정지 보이스피싱만 가능…피해 줄이려 일단 허위신고
"벌금형 이상 나오기도"…"환불 받아주겠다"고 접근해 2차 사기까지
- 송상현 기자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비상장 주식 투자를 권하며 접근한 일당에게 4000여만 원을 뜯긴 김 모 씨(48). 어떻게든 피해금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이 아니기 때문에 사기범의 계좌를 지급정지시킬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또 한 번 무너졌다.
절실한 마음에 피해를 복구할 방법을 찾다가 보이스피싱으로 일단 신고해 사기범들의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란 조언을 들었다. 이에 김 씨는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하고 사건사고사실확인원을 받아 은행에 계좌 지급정지를 신청했다.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조사 중에 김 씨가 거짓 진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괘씸하다"며 화를 내더니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결국 검찰은 벌금 60만 원에 약식기소했고 벌금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결국 피해금도 돌려받지 못한 채 김 씨는 전과자 신세가 됐고 이는 곧바로 생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테리어 업체를 하는 김 씨는 "군 관련 행사에 참여하려다가 벌금형 전력 때문에 거절당하기도 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계좌 지급정지 보이스피싱만 가능 …"울며 겨자 먹기, 허위 신고할 수밖에"
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불법 투자리딩방, 로맨스스캠(혼인빙자사기) 등 사이버상에서 벌어지는 신종 사기에 돈을 뜯긴 피해자가 피해금 회복 등에 나설 마땅한 방법이 없다. 경찰에 고소해 봐야 사기범들이 대포통장, 대포폰을 사용하고 있는 탓에 추적이 쉽지 않고 수개월을 끌다가 '수사 중지' 통보가 날아오는 게 대다수다.
피해자들은 사기범의 계좌로 돈을 이체한 후 이르면 당일에도 사기인 걸 인지하게 되는 만큼 상대방 계좌를 동결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의 경우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사기범이 이용한 금융회사에 계좌 입출금 금지 요청을 하면 즉각 지급이 정지된다.
하지만 리딩방, 로맨스스캠 등 신종 사기는 이 법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지급정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가 사기범들로부터 비상장 주식 정보 등 서비스를 제공받은 만큼 이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에 해당한다. 현행법은 가족이 다쳤으니 돈을 입금하라거나 경찰·검찰·금융감독원을 사칭해 돈을 요구하는 전통적인 수법만 전기통신금융사기라고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신종 사기 피해자들은 위법행위인지 알면서도 피해금 회복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허위신고에 나선다. 투자사기 피해자 B 씨는 "평생 모은 돈이 날아가 하늘이 무너지는데 벌금형이 무섭겠냐"고 한탄했다.
강릉에 거주하는 A 씨(56) 역시 지난해 12월 외환거래 리딩방 사기에 걸려들어 1억 700만 원을 뜯겼다. 난생처음 당한 사기에 혼비백산이 된 A 씨는 리딩방 사기도 상대 계좌 지급정지가 가능하다는 홍보 글을 발견하고 업체에 연락했다. 업체는 A 씨에게 보이스피싱 사기로 경찰에 허위 신고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피해금 환수에 성공하면 20%를 수수료로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A 씨는 이를 그대로 따랐지만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하루 만에 경찰에 찾아가 거짓으로 신고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A 씨는 "우리나라 법이 사기 치는 인간들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하루빨리 법이 개정돼 피해자들이 피해 본 금액 중 일부라도 찾길 기원한다"고 호소했다.
◇보이스피싱 허위신고 유도하는 업체들…수임료 챙기고 잠적하는 2차 사기까지
실제 피해자 커뮤니티나 포털 사이트 등에선 리딩방 사기 등을 당했을 경우 피해금을 돌려받도록 해주겠다는 사설탐정이나 법무 법인 등의 글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허위 신고를 부추기기 위해 환불 성공담 등을 거짓으로 적은 글도 다수 발견된다.
이런 업체들이 피해금 회복을 돕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가 허위 신고를 유도하는 방식을 쓰기 때문에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허위 신고 시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경찰을 속여 허위 사실관계확인원을 받는 행위 등엔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도 적용된다.
더군다나 피해금 회복을 해준다고 접근해 수임료만 챙기고 잠적하는 2차 사기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로맨스스캠과 부업 사기가 결합한 혼종 사기로 2억 3000만 원을 잃은 김 모 씨(38·여)는 "피해 사실을 커뮤니티에 올렸더니 돕겠다는 쪽지가 왔다"며 "알고 보니 피해자인 척 연기하는 사기였고 실제 2차 피해를 본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최염 비케이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허위 보이스피싱 신고는 피해자라는 점이 참작될 순 있지만 벌금형 이상도 나올 수 있어 위험하다"며 "허위 신고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피해금 환수 시 수수료를 받은 행위도 불법"이라고 말했다.
법망에 구멍이 났다고 판단한 경찰 역시 신종 사기도 계좌 지급정지가 가능하게 하는 내용의 '사기방지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사기방지기본법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의 '용역의 제공·재화의 공급'이라는 단서 조항을 없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사기 범죄에 대해 임시 동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하지만 사기방지기본법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원일치 통과 후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29일까지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인터넷 너머 일면식도 없는 인물에게 사기당한 피해자들은 곧바로 지옥으로 빠져든다. 경찰에 신고해도 온라인에서 철저하게 정체를 숨긴 사기 사범들은 계속해서 피해자를 농락할 뿐이다. 올해 1분기에만 사기 범죄는 10만 건을 넘어섰지만, 이중 절반 정도만 경찰의 검거망으로 들어온다. 뉴스1은 최근 폭증하는 비대면 사기 범죄의 실태와 원인을 살펴보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