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년] 수차례 개정에도…"중대재해법, 시민재해 조항 유명무실"

전문가 "특정 장소만 열거하는 방식 개선해야…책임 범위도 모호"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 의식 수준 높아졌는데 입법 수준 못 미처

16일 인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10주기 추모식에서 참가자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2024.4.16/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임윤지 기자 =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 시행 이후에 이태원 참사와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일어났지만 정작 법 적용이 힘든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6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재난 전문가와 법조계 관계자들은 "중대재해법상 중대시민재해 법 조항을 제정한 취지는 좋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참사가 발생해도 중대시민재해로 인정되는 요건이 까다롭고, 요건이 성립된다 해도 책임과 임무 등 범위가 모호하다 보니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설명이다. 재난 참사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기준은 엄격해진 데 비해 법이 아직 그 수준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대시민재해' 적용은 먹통…흐지부지된 참사들

전문가들은 법을 만들어놓고도 중대산업재해를 다룰 때만 법이 적용될 뿐 사회적 참사가 발생해도 이 법을 실질적으로 적용하지 못한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중대시민재해로 명시한 공중이용시설 범위를 시행령으로 열거하는 과정에서 제한된 장소나 시설물 개념으로만 나열해 법의 사각지대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2022년 10·29 이태원 참사 역시 중대시민재해로 인정받을 수 없었던 이유도 사고 장소가 일반 도로라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생한 '분당 정자교 붕괴 사건'과 '오송 지하차도 참사' 역시 중대시민재해 인정 여부를 둘러싸고 1년째 지지부진한 논의만 이어가고 있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중대시민재해 적용 범위를 정할 때 법이 적용되는 특정 장소만 나열할 것이 아니라 '일부 장소를 제외한 나머지 장소'처럼 예외 조항만을 둬 일반 시민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일상 생활공간, 시민중심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에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 내용이 담겨있다.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려면 △사건이 발생한 곳이 공중이용시설이나 공중교통수단이어야 하고 △그 시설에 설계·제조·설치·관리의 결함이 있어야 하며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해야 한다.

중대시민재해를 발생시킨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형법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는 데 비하면 형량이 훨씬 높은 셈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16일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 세월호 침몰 해역 선상에서 엄수된 추모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2024.4.16/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중대시민재해 성립해도 입증까지 난항…"처벌 강화 능사 아냐"

설령 중대시민재해의 법적 요건에 해당한다고 해도 책임자를 실질적으로 처벌하기엔 무리한 법안이라든 지적도 나온다. 재난 대응의 주체가 행정의 영역인 만큼 임무와 책임 등을 세분화하는 입법이 필요하지만, 중대시민재해 관련 법 조항에는 이런 내용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사고 책임 규명은 꼼꼼하게 만들어놓지 못한 상황에서 처벌 수위만 강화하다 보니 업주와 지자체 등은 꼬리 자르기식으로 실무자만 처벌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장에서 재난안전교육 등을 오래 가르쳐온 관계자들은 "산업별 특성에 맞는 법령을 마련해 자주적인 안전 관리를 유도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업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벌 위주의 감독 등의 영향으로 재난 예방 효과가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정일 국가민방위재난안전교육원 교수는 "시설과 기관 등 대상으로 교육하는 입장에서 이 법률을 설명하다 보면 분야별로 안전 규정이나 규칙 적용 범위가 넓다 보니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업주들 입장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현장을 잘 아는 실무자들이 모여 각 업계 세부 항목을 정비할 수 있도록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도 "해당 법은 시민의 부상이나 재해가 업주 혹은 지자체의 책임까지 연결돼야 하는데 그러한 연결성이 명확하지 않다"며 "법이 실질적인 안전의 책임을 묻기보다 '어떻게 하면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는 상황"이라 지적했다.

이어 "애초에 입증하기 어려운 걸 법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에 현실에서 잘 쓰이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꼬집었다.

16일 오전 9시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고교생 등 474명이 탄 6천 825t급 여객선 세월호가 침수됐다. 2014.4.26/뉴스1

◇"재해 원인 꼼꼼한 분석 의무화해야"

전문가들은 10년 전 세월호 참사의 교훈 역시 단순히 제도나 체계 등 형식적인 개선 정도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민재해는 특성상 복합적인 원인이 압축돼 일어나기 때문에 반복되는 재해의 원인을 분석한 세부 매뉴얼 및 유형별 사례 분류, 그 분석의 데이터화 작업 등 전반적인 검토와 기록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손 변호사는 "현행 재난안전법에 사고 발생 시 재난 원인 조사가 필요한 경우 포괄적으로 재해 원인을 시공부터 감독관리 등 일련의 과정을 검토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작동이 안 되고 있다"면서 "중대시민재해 조항에 이러한 내용을 의무적으로 개시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주 교수도 "경영진의 책임성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여기 수준에 맞게끔 실제 현장에 있는 근로자·시민들의 개개인 안전에 대한 의식 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재해는 계속 반복된다"며 "각각의 안전 축이 동시에 상향될 수 있도록 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의 노력이 조화를 이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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