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기 뼛속 스미고 수염에 고드름 달리지만"…쉴 곳 없는 라이더들
이동노동자 쉼터 서울에 13곳 불과…상권 멀어 이용 못해
하루 8~10시간 추위 노출…"간이형이라도 쉼터 늘려주길"
- 임윤지 기자
(서울=뉴스1) 임윤지 기자 = "손발이 얼어도 할 수 없어요. 다음 콜 올 때까지 길에서 기다려야죠."
전국에 '시베리아급' 강추위가 다시 찾아온 2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청계천 인근 도로에서 퀵서비스 배달 일을 하는 임모씨(64)가 씁쓸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외환위기 당시 사업을 접고 25년째 퀵서비스 일을 하고 있지만 찬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은 여전히 힘든 계절이다. 옷을 네 겹 껴입었는데도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든다. 임씨는 "추운 날 도로와 인도의 눈을 피해 운전하면 늦을 수밖에 없다"며 "오늘처럼 추운 날 일이 밀리면 밤늦게 퇴근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강풍과 혹한에 눈까지 날리는 겨울철, 배달 라이더들이 울상짓고 있다. 콜이 오면 바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도로 한쪽 오토바이 안장 위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임씨는 "장갑이나 양말을 겹치는 것도 한계가 있어 손발이 항상 시리다"며 "이런 날 하루 10시간 가까이 밖에만 있으면 수염에 고드름이 생긴다"고 말했다.
◇ 서울시내 쉼터 불과 13개소…접근성도 낮아
서울시내 자치구는 25개인데 라이더 등 야외 이동 노동자를 위한 쉼터는 13곳에 불과하다.
80만명(2022년 기준)으로 부쩍 늘어난 배달·배송·운전 등 플랫폼 종사자들이 이용하기에는 쉼터가 턱없이 부족하고 접근성도 낮다.
광화문역 근처에서 만난 3년 차 라이더 박모씨(54·남)는 이날 아침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쌍화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 게 전부였다.
박씨는 "정해진 휴게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5~10분씩 쉬는 게 전부"라며 "이마저도 눈치가 보여 조금 서성이다 자리를 뜬다"고 말했다. 박씨는 "쉼터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가는 데 30분 이상 걸린다"며 "춥지만 콜 잡기 쉬운 곳 길가에서 기다린다"고 말했다. 라이더는 콜을 받기 위해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대기해야 하는데 쉼터가 상권과 떨어진 곳에 많아 겪는 불편이다.
이날 오전 8시30분 업무를 시작한 도보 배달원 신모씨(40대·남)도 "얼어붙은 몸을 풀기 위해 종각역 인근을 뛰어다녔다"면서도 "쉴 곳이 없어 밖에 계속 있다 보니 몸이 풀리기는커녕 더 어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신씨는 "음식 등 배달이 많은 번화가 인근에 작은 쉼터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당분간 한파…"간이형 쉼터라도 곳곳에 만들어주길"
기상청에 따르면 추위는 이번주 내내 이어진다. 그러나 이동노동자는 특수고용 신분이라 추위를 막을 방한 장비는 자비로 마련해야 한다. 방한화나 장갑은 10만원이 넘고 오토바이 열선 장치는 수십만원이 든다.
배달플랫폼노조 관계자들은 매서운 바람에 하루 8~10시간 노출된다며 일터와 가까운 곳에 쉼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간이형이라도 접근성이 높은 쉼터를 곳곳에 만들어주면 좋겠다"며 "설치만 할 게 아니라 적극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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