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재판' 가는 김광호…'세월호' 못지않은 법리 다툼 예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기소…檢 "경찰력 배치 등 필요한 조치 안해"
"구체적 긴급 상황 어떻게 보고받았나" 관건…법리 공방 첨예할 듯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2023.10.1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임윤지 김민수 기자 = 이태원 참사 관련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60·행시 특채)의 향후 재판에서는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고된다. '업무상과실치사상'은 '윗선의 과실'과 '사고' 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쉽지 않은 혐의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부실대응 의혹을 받던 해경 지휘부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잇달아 무죄가 확정된 바 있다. 그러나 해경 지휘부보다 김 청장의 혐의가 비교적 구체적이라 유죄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대검도 "기소 시 공소유지에 문제 없도록 해라" 주문

김 청장은 2022년10월29일 밤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릴 것을 알고도 안전관리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부실 대응해 사상 규모를 키운 혐의를 받는다. 당시 159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쳤다.

검찰이 19일 기소한 김 청장의 정확한 죄명은 '업무상과실치사상'이다.

형법 제268조에 따르면 업무상과실치사상은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를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혐의의 핵심 기준은 '사고 예견 가능성'과 '주의 의무'다. 이태원 참사로 따지면 경찰관이나 소방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안전사고 가능성을 예견하고도 주의 의무 등 조처하지 않아 사람이 죽거나 다친다면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청장은 참사 발생 전인 2022년 10월 두 차례 화상 회의를 했다. 김 청장은 화상회의에서 '인파 집중'의 위험성을 언급하며 대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핼러윈 축제의 대규모 인파 밀집 가능성과 안전 대책 필요성이 담긴 정보보고서가 참사 2주 전 김 청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인파가 몰리니 위험하다'는 통상적인 안전사고 가능성을 예견하는 것과 '사망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참사 가능성을 예견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다르다. 후자임에도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참사의 인과관계가 인정돼 형사 처벌받을 수 있지만, 전자일 경우 다툼의 여지가 크다는 의미다.

지난해 1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치안 상황 보고를 받은 김 청장이 핼러윈 참사 당일 안전사고 가능성을 통상적인 수준보다 '구체적으로' 예견했음에도 경찰력을 제대로 배치하지 않아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판단해 김 청장을 검찰에 송치했다. 김 청장은 경찰이 검찰에 송치한 피의자 중 최고위직이기도 하다.

검찰도 김 청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당시 서울경찰청장으로서 이태원 핼러윈데이 다중 운집 상황으로 인한 사고 위험성을 예견하였음에도 적절한 경찰력 배치 및 지휘·감독 등 필요한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목할 것은 서울서부지검이 1년여간 김 청장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최고위 지휘부의 주의의무 위반과 인명피해 간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까다로워 검찰의 고심이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난 15일 이원석 검찰총장 직권으로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를 열었다. 검찰로서도 판단이 어려워 수심위에 의견을 요청한 셈이다. 수심위 결과 위원 15명 중 9명은 기소, 6명은 불기소를 권고했다.

'예상 밖 기소 의결'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불기소 의견이 40%에 달하는 점 역시 법리적으로 업무상과실치사상을 판단하기 어려웠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검찰 내부적으로도 김 청장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재판에 넘겨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도 있었다.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김성호 재난안전관리본부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을 비판하는 종이가 놓여 있다. 2022.11.9/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대검에서도 '김 청장을 기소할 경우 공소유지에 문제 없게 하라'는 메시지를 서부지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청장 재판에서는 증거를 통한 사실 판단이나 법리 공방이 첨예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수부·지검지청장을 지낸 박상진 변호사(중앙N남부 대표변호사)는 향후 재판과 관련해 "경찰 지휘부로서 일반적인 조직 관리 책임을 넘어 '구체적인 긴급 상황에서 어떻게 보고받았느냐'가 관건"이라며 "사고 당시 객관적인 환경이나 조건, 상황의 긴급성 등을 엄밀하게 입증해야 형사 책임을 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무자 책임만 지우는 것도 부담…공동정범 인정 가능성"

세월호 참사 당시 사고 대응 책임자의 경우 대법원에서 엇갈린 판단을 받았다.

현장 지휘관이었던 김경일 전 목포 경찰서 123정장은 대법원에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이 확정됐다. 같은 혐의를 받았던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지휘부 10명은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통신이 원활하지 않아 이들이 현장의 긴박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했다며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한 경찰 간부는 "일반적으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는 현장에서 멀어질수록 입증되기 어렵다"며 "현장에서 멀리 있으면 현장 상황을 알기 힘들어 책임을 부과하기 어렵고, 현장에 가까이 있으면 현장 상황을 잘 알 수 있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반면 '거리'를 기준으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유무를 판단하기 힘들다는 반론도 있다.

원혜욱 인하대 로스쿨 교수는 "단순히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기준으로 판단하긴 힘들다"며 "경찰 지휘부는 일정 규모의 인원이 모이면 경찰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확인해야 한다. 사복이 아닌 정복을 입은 경찰력이 얼마나 현장에 배치됐는지 등이 입증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고 그 원인이 된 행위를 특정하기 힘들다고 해서 사회적 관심이 큰 사안을 현장 대응 기관 관련자에게만 책임을 무는 것도 재판부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김 청장 역시 참사 당일 인력 배치 등 지시를 주고받은 과정에서 문제 소지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공동정범으로 인정될 소지가 다른 기존 사례들보다 크다"고 말했다.

immun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