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시한부 선고 받은 보신탕…"할머니 때부터 이어온 가업, 이젠 끝"

개식용금지법 국회 통과…사육·도살·유통 모두 처벌
상인들 "실낱 같던 희망 마저 사라진 기분"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시장에 있는 개 식용 음식점. 2024.1.9/뉴스1 ⓒ News1 임윤지 기자

(서울=뉴스1) 임윤지 김민수 기자 = "할머니 때부터 이어온 가업이라 코로나19 때도 빚을 내서 계속 일을 이어왔는데 이제 정말 끝이 나는 것 같다"

9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종로구 한 시장에서 만난 보신탕집(개 식용 음식점) 주인이 한 말이다. 한때 이 시장에는 보신탕 가게가 여러 개 있었지만 이제는 겨우 두 곳만 남아있다.

점심시간을 앞둔 상인들은 개고기 뼈를 바르고 분주히 탕을 끓이고 있었다. 추운 날씨 탓인지 어르신들이 일찍부터 가게를 찾아 음식을 먹으며 몸을 녹이고 있었다.

이날 개 식용 금지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보신탕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이다.

특별법은 식용 목적으로 개를 사육·도살·유통·판매 등을 금지하고 개 식용 도축 유통 상인 등에게 개 식용 종식 이행계획서를 제출·이행하도록 했다. 또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사육·증식·유통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다만 벌칙 조항은 법안 공포 후 3년 후부터 시행된다. 2027년부터는 개고기 제조와 유통이 완전히 불법이 되는 셈이다.

이날 만난 개 식용 음식점 상인들은 "실낱 같던 희망 마저 사라진 기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음식점을 나서는 손님들도 상인들을 향해 "힘내세요"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한 개 식용 음식점 상인 A씨는 "(반대)집회·시위에도 몇 번 참여해봤지만 어제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는 걸 보고 마음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또 A씨는 "목소리를 내면 낼수록 돌아오는 건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과 손가락질뿐이었다"며 "이제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보신탕 가게 상인 B씨는 "사람들은 개고기 수요가 없지 않냐고 말하는데 60, 70대뿐만 아니라 40대나 그 이하 어린 손님들도 많이 온다"며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이 오는데 언론이나 설문조사를 보면 마치 아무도 안 먹는 걸로 나오니까 속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맞은편에 있는 보신탕 가게에는 연령대가 다소 높은 손님뿐만 아니라 양복 차림의 젊은 남성들도 눈에 띄었다.

가게 주인 C씨는 "30년, 40년 넘게 해온 일인데 갑자기 3년을 주고 폐업하라고 하니 당황스럽다. 염소 등 다른 일들을 찾아보고 있지만 쉽지만 않아서 계속 찾는 상황"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개 식용 금지법에는 농장주, 도축업자, 유통상인, 음식점 등 종사자의 생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 지원 의무화 조항이 포함됐다. 하지만 상인들은 "말을 쉽게 한다"며 반발했다.

A씨는 "개고기를 둘러싼 논란은 수십년 전부터 이어져온데 반해 상인들 보상 얘기는 졸속으로 논의됐다"며 "이렇게 갑자기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니까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야 하나 막막하다"고 말했다.

B씨 역시 "전쟁 이후로 가난할 때 태어나 해본 거라곤 이 일뿐인데 이제 와서 어떻게 새로운 일을 익히겠냐"며 "정육점이나 다른 육류 일에 종사하면 되지 않냐고 말을 하지만 엄연히 다른 일"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 인근에서 40년째 옷 장사를 해왔다는 60대 송모씨는 "예전엔 손님이 정말 많았는데 확실히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면서 "개 식용 금지는 시대적 흐름이니까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같은 상인으로서 걱정이 되는 만큼 확실하게 그에 상응하는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복을 맞아 '개고기 식용금지'를 두고 찬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초복인 11일 서울 시내 보신탕집의 모습. 2023.7.11/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immun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