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자랑스러워"·"역시 페이커"…롤드컵 우승에 광화문 '들썩'
바람 불고 춥지만 광화문 곳곳 응원 열기 가득…페이커 관심 집중
T1 3-0 대승…고척돔 만원, 온라인서도 140만명 동시 접속 시청
- 조현기 기자, 금준혁 기자, 박소은 기자
(서울=뉴스1) 조현기 금준혁 박소은 기자 = 19일 오후 8시11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통해 중국 WBG팀의 넥서스가 부서지자 광장에선 큰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이날 오후 구로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LOL·롤)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한국의 T1이 세트 스코어 3대0으로 중국의 WBG(웨이보게이밍)를 꺾고 대승을 거뒀다.
이번 롤드컵은 E스포츠 역사상 처음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거리응원전이 펼쳐졌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광장에는 이른 시간부터 T1을 응원하기 위한 열기로 가득 찼다.
회사 주말 당직을 끝내고 광화문 광장으로 달려온 김모씨(31·남)는 "진짜 오늘 엄청나게 집중해서 일을 하고 이곳에 왔다"면서 "E-스포츠도 이런 곳에서 중계를 해주고 정말 꿈만 갔다. 오늘 꼭 우승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 광화문 광장 곳곳 메운 응원 열기…대규모 환호성·탄식 이어져
1세트가 시작된 이날 오후 6시.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뒤부터 이어지는 넓은 공간엔 사람들로 빼곡히 들어찼다. 안전요원들은 인파 관리에 부쩍 신경 쓰고 만일 중간에 멈추는 사람들이 있으면 "빨리 이동해달라"고 목소리 높여 외치며 계속 경광봉을 흔들었다.
세종대왕 동상에 마련된 공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이순신 동상 인근과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T1을 응원했다. 이곳 역시 안전요원들이 "앉아달라", "이동해달라"를 외치며 인파 관리에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외국인 팬들도 이곳을 찾아 응원 열기를 만끽했다.
주변 벤치에 자리를 잡거나 인근 상점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삼삼오오 모여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광장 근처 카페 곳곳에선 노트북과 휴대전화로 시청한 사람들이 T1의 경기 상황에 따라 환호성과 탄식을 지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시민들은 스크린에 페이커가 비치거나 그의 플레이어가 조명될 때마다 "빛상혁" 등을 외치며 크게 환호했다. 2013년 LOL 프로 데뷔 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우승 경력을 보유한 페이커는 e스포츠계에서는 자타공인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를 지닌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지난 9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해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1세트에서 페이커가 상대를 압박하던 중 점멸 주문에 빠지자 현장에선 "안돼", "와"라며 큰 탄식이 나왔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T1이 경기를 리드하고 경기 시작 30분만에 첫 승리를 가져가자 곳곳에선 "상대가 안되는구먼", "이길 줄 알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수능을 마친 윤모군은 "오늘 수시 논술을 끝내고 바로 달려왔다"며 "평소 T1을 응원하진 않지만, 오늘은 T1이 중국을 확실히 꺾어주고 롤드컵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방긋 웃었다.
경기장 근처를 지나가는 한 시민은 "정말 이 정도로 롤이 인기가 많냐"며 "정말 이 역리에 놀랍다"고 취재진에게 롤의 인기와 젊은 세대의 반응을 묻는 등 아직 롤과 E스포츠 응원 열기가 어색하다고 고백한 시민도 있었다.
아내와 함께 광화문 응원 현장을 찾은 40대 이모씨는 "세대 구분에서 롤을 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가 나뉠 것"이라며 롤 게임이 가진 의미를 설명하며 "노년층과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솔직히 이해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제 세대 그리고 2030을 중심으론 롤을 한 사람들의 공유하는 문화가 분명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앞선 1세트와 2세트 내내 흐름을 내주지 않던 T1은 3세트에서 30분도 넘기지 않은 25분만에 승리를 일찍 확정 지었다. 오후 8시10분쯤 흥분한 캐스터들의 해설 소리와 격렬한 마지막 싸움에 승리를 직감한 관객들은 더 큰 함성을 지르며 선수들을 끝까지 응원했다.
결국 1분 동안 끝까지 상대를 거세게 몰아친 페이커를 비롯한 T1 선수들은 WBG를 꺾고 우승을 확정 지었고 팬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환호했다. 우승 직후 30대 남성 최모씨는 "선수들 너무 고생 많았다"며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울먹였다.
◇ 고척돔도 응원 열기 가득…온라인서도 동시접속 100만명 이상
광화문 광장뿐만 아니라 고척돔에서도 응원 열기로 가득했다. 경기 직전 뉴진스의 공연이 시작되자 현장의 분위기는 최고조로 올랐다. 특히 1세트 페이커가 점멸 주문에 빠졌을 때는 현장에서 "티원", "티원"을 외치는 소리가 거세게 울려 퍼졌다.
광화문처럼 열띤 응원전이 펼쳐진 현장에선 무엇보다 마지막 세트였던 3세트가 시작할 땐 다른 세트보다 더 크게 "파이팅"이란 소리가 경기장 내에 울려 퍼졌다. 결국 T1이 우승을 확정 짓고 페이커가 트로피를 들어 올리자 관객들은 열띤 환호성을 보내며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응원 열기가 굉장히 뜨거웠다. 집에서 시청한 김모씨(32·남)는 "치킨을 시켰는데 롤 때문인지 평상시 30분이면 오는 데 1시간이나 걸린다"라며 "치킨이 배달되기 전에 아니 치킨이 식기 전에 T1이 경기에서 이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튜브 채널 LCK에서 중계한 '2023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생중계는 경기가 시작하자 동시 접속자가 100만명을 가뿐히 넘어섰다. 특히 2·3세트가 진행될 때는 동시 접속자가 무려 14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다.
시청자들은 채팅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3:0 가자", "대상혁", "티원(T1) 파이팅", "140만명 ㄷㄷㄷ", "우승" 등의 각양각색의 다양한 반응을 보이면서 경기 내내 열띤 응원을 했다.
집에서 유튜브로 이날 경기를 시청한 T1의 오래된 팬인 서모씨(33·남)는 "어제 자면서 T1이 우승하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이날 경기를 위해 집안일도 미리 다 해놓았다"며 "우승해서 너무 기쁘다"고 소리쳤다.
2011년부터 매년 가을 열리는 '롤 월드 챔피언십'은 각국 리그 강자가 모여 그해 세계 최강팀을 가리는 대회다. 세계 최대 e스포츠 행사로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 빗대 '롤드컵'이라 불린다. 한국에선 앞서 2014년과 2018년 롤드컵이 열린 바 있다.
무엇보다 이번 대회는 '페이커'의 극적인 서사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T1은 전신인 SK텔레콤 T1 시절 2016년을 마지막으로 이후 롤드컵을 들지 못했고 '노장'인 페이커가 한국에서 롤드컵을 거머쥘 기회는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결국 페이커는 이번 우승으로 7년만에 롤드컵의 우승 트로피를 다시 들어 올리게 됐다.
choh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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