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쇼트커트' 포기한 이유…"짧은 머리=페미 편견, 불이익 걱정"

짧은 머리 아르바이트생 폭행 사건에 여성들 '불안' 호소
"짧은 머리가 죄냐" 온라인에선 '쇼트커트 챌린지' 확산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다시 짧은 머리(쇼트커트)를 하는 건 취업 이후로 미루려고요."

서울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인 장모씨(26). 현재 귀밑 5~6센티미터(㎝)의 단발인 그는 대학 입학 후 3~4년간 유지해오던 쇼트커트(short cut) 머리를 다시 시도하려 미용실을 예약했다가 취소했다. 여성이 짧은 머리를 했다는 이유로 폭행당한 사건을 보고 자신도 물리적 가해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다.

장씨는 "머리 모양과 특정 사상을 연결짓고, 여기에 폭력을 가해도 된다는 혐오 표출 방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번 사건과 기사에 딸린 댓글 반응을 보면서 아직까지 쇼트커트에 편견이 만연하다고 느꼈다. 폭행까진 아니어도 취업 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돼 당분간은 머리를 기를 것"이라고 말했다.

짧은 머리를 이유로 또래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폭행한 20대 남성의 사건이 알려지면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 일부 여성들은 머리모양을 사상 검증의 잣대로 삼는 것을 비판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쇼트커트 챌린지'에 동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혐오 표출이 온라인상 의견 표명을 넘어서 물리적 가해로까지 확장되자 온라인 기반 여성 연대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강남역 사건, 미투 운동 때와 비슷한 맥락이다. 또 이번 사건을 혐오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등 사회적 경고 수위를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 주변 한 편의점(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2023.8.9/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짧은 머리면 페미니스트, 맞아야" 진주 편의점 폭행 사건에 여성들 '불안' 호소

1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4일 경남 진주시의 한 편의점에선 쇼트커트를 한 여성 직원 A씨가 또래인 20대 남성 B씨에게 머리 길이를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 A씨는 폭행으로 염좌와 인대 손상, 귀 부위에 상처를 입었으며, B씨는 특수상해 및 재물손괴 혐의로 구속됐다.

B씨가 범행 당시 "여성이 머리가 짧으면 페미니스트", "페미니스트는 맞아야 한다"며 A씨를 폭행한 것이 알려지자 일각에선 혐오 범죄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경남 진주시의 30여개 시민단체는 지난 7일 진주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여성을 무시하는 태도에 기반한 혐오범죄"라며 엄벌을 촉구했다. B씨의 강력 처벌과 그의 신상공개를 촉구하는 국민청원 은 11월16일 기준 1만5934명의 동의 수를 기록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20대 대학원생 송모씨는 이번 사건을 보고 몇년 전 쇼트커트를 했을 때의 경험이 떠올라 섬뜩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허리 중간까지 긴 머리를 유지하다 다양한 머리를 해보고 싶어 5년 전 투블록을 시도했는데 당시 주변 남자들로부터 '남자같다' 등 핀잔을 들은 경험이 있다"며 "당시엔 편견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그냥 넘겼지만 지금은 폭행 등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28)는 "머리 모양은 1차적으론 개인의 취향이자 자기표현의 한 형태"라며 "올림픽 국가대표인 안산 선수 때도 그의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사상 검증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이번엔 폭행으로까지 이어지는 걸 보고 놀랐다. 왜 폭력을 써가면서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짧은 머리가 죄냐" 온라인에선 '쇼트커트 챌린지' 동참하기도

일부 여성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며 피해자와의 연대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 SNS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쇼트커트 챌린지'가 대표적이다. 16일 기준 X(옛 트위터) 등 주요 SNS에 '#여성_숏컷_캠페인'을 검색하면 짧은 머리를 한 여성들의 사진이 여럿 공유된다.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20대 직장인 김모씨도 그중 하나다. 김씨는 "지금은 머리 모양이지만 나중엔 옷차림 등 다른 걸로도 검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문제의식이 생겼다"며 "주위에서 손질이 편하다는 말을 듣고 짧은 머리를 고민하던 차에 챌린지를 보게 돼 망설임 없이 잘랐다"고 말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2016년 이후 여성운동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온라인 기반 여성 연대'라고 분석했다. SNS 해시태그 등을 통해 일상 속 성폭력이나 안전을 위협받는 경험을 공유한 '미투 운동' 등의 흐름이 '쇼트커트 챌린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혐오 범죄의 양상이 커뮤니티 속 의견 표명에서 실제 사람을 향한 폭력으로 변한 부분에선 우려를 나타냈다. 권 소장은 이를 가리켜 "혐오 표출의 발화점이 낮아진 모습"이라며 "머리카락 길이에 대한 본인 생각을 폭력으로 표현했을 때 사회적 동의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범행에서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B씨는 본인이 남성연대라는 단체 소속이라고 주장하며 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을 혐오 범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에선 혐오의 규정 자체가 법의 명확성 원칙(죄형법정주의)을 위반할 소지가 있는 점, 범죄 동기가 이미 양형 기준에 편입돼 형량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점 등을 고려해 특별법 등을 통한 혐오범죄 가중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에서 발간된 '젠더혐오범죄에 대한 형사정책적 대응 방안'에 따르면 미국은 1969년 '혐오범죄예방법'을 제정해 인종·종교·성별 등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에 한해 혐오범죄를 규정하고 있다. 독일은 인종 배척 및 인간 경멸에 기반한 혐오범죄에 대해선 가중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을 개정했다.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소속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는 "인종 차별에 따른 사회 붕괴, 유대인 학살 등 문제를 겪은 독일, 미국 등 나라와 한국을 단순 비교하긴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이번 편의점 폭행 사건의 경우 강남역 사건 등과 다르게 정신병력 등의 부가적 요소가 없어 혐오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출 여지가 크다. 불특정 대상 분노 표출을 사법체계 내에서 어떻게 평가할지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