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에게도 배상해야"…근로자 아니어도 직장 내 괴롭힘 인정 늘었다

직장갑질 판례 87건 분석…직장 내 괴롭힘 폭넓게 인정
"갑질 상사 해고 정당…신고자·피해자 보복해서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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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던 A씨는 상사의 모욕과 외모 비하로 괴로워하다 극단 선택했다. 법원은 "직장 내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켰다면 피해자가 반드시 근로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B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가 구내식당으로 전보됐다. 부당한 보복이라 생각한 B씨는 법원을 찾았고 재판부는 "불리한 처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법원이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징계의 정당성과 적용 범위 등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직장갑질119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지원을 받아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민사·형사·행정 소송 판례 87건을 분석한 뒤 발행한 '2023 직장 내 괴롭힘 판례 분석 보고서'에서 확인됐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은 특수고용·플랫폼·위탁계약·프리랜서 노동자 등 근로계약을 하지 않은 노동자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법원은 캐디, 승선근무예비역 등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피해자에 대해서도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월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의 괴롭힘에도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고 정신적 손해 배상으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시한 바 있다.

성차별적 폭언을 퍼붓는 등 '갑질 상사'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놓기도 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21년 2월 성차별적 폭언을 하고 볼펜을 집어던진 상사의 해고 처분이 정당하다고 선고했다. 수원지법은 8개월동안 구애 갑질을 하고 언어적 성희롱을 한 행위자를 회사가 해고한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 조사 및 조치 의무 위반에 대해 회사가 피해자나 참고인의 진술을 청취하지 않거나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채 가해자의 소명만을 듣는 것은 객관적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이라 보고 있다. 회사가 제대로 조치의무를 취하지 않거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준 것도 손해배상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한 개인과 조직은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2021년 11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다면 위법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해 피해자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의 원인이 된다"고 판결했다.

이밖에도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자에게 보복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피해자를 원하지 않는 근무지로 발령낸 사건에 대해 법원은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법원은 회사가 보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장갑질119 강은희 변호사는 "괴롭힘 행위자뿐 아니라 회사에도 법적 책임이 적극적으로 인정되고 있다"며 "회사의 직장 내 괴롭힘 조치 의무의 준수뿐 아니라 피해자 중심의 적극적인 사건 해결이 수반돼야 비로소 회사가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bc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