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 음주운전 사망사고 '오락가락'했던 뺑소니 혐의 적용 왜?
'도주의사 없다고 봤다'던 경찰, 검찰 송치 때 뺑소니 혐의 적용
대법 판례, 만취 뺑소니 심신미약 불인정…미필적 도주 판단도
- 김정현 기자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초등학교 스쿨존에서 만취해 차를 몰다 초등학생을 숨지게 한 30대 남성 A씨에게 결국 도주치사(뺑소니)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이 구속영장에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치사(소위 '민식이법') 및 위험운전치사, 음주운전 혐의만 적용하면서 논란이 제기돼 왔다.
경찰은 9일 오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의관한법률(도주치사)·어린이보호구역치사·위험운전치사·음주운전 혐의로 A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피의자 A씨는 지난 2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B군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지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를 운전했으며, 초등학교 후문 인근 자신의 집 차고로 들어가는 길에 사고를 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 전 집에서 혼자 맥주를 1~2잔 마셨다"고 진술했으나 당시 혈중 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0.08% 이상)으로 만취 상태였다.
◇경찰 뺑소니 혐의 미적용에…유족·학부모 등 탄원서 5000장 모아 항의 방문
당초 경찰은 A씨가 주차를 마친 뒤 약 40초 만에 현장에 갔으며, 이후 주변인에게 112 신고를 요청한 점 등을 고려해 도주 의사가 없는 것으로 봤다.
이에 지난 3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치사(소위 '민식이법') 및 위험운전치사, 음주운전 3가지 혐의만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에 피해자 유족 및 같은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도주치사 혐의가 빠진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유족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학생 및 학부모, 지역주민 등 약 5000명의 서명을 받은 탄원서를 모아 지난 7일 강남경찰서에 제출하기도 했다.
유족 측은 탄원서를 통해 "가해 운전자에게 뺑소니 혐의가 적용되지 않는 등 운전자의 책임이 축소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이 사건의 수사가 부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피해학생이 다니고 있던 초등학교 학부모회도 사건을 수사 중인 강남경찰서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가해자, 뺑소니 혐의 계속 부인…대법원 판례는 '음주 뺑소니' 심신미약 불인정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끝까지 뺑소니 혐의를 부인한 것 알려졌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는 사고운전자가 사고 직후 차에서 내려 직접 확인했더라면 쉽게 사고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사고현장을 이탈한 것을 미필적인 도주 의사가 있던 것으로 보고있다.
또 만취 상태로 교통사고를 내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도주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음주할 때 교통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성을 예견하면서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봐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례도 있다.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엘앤엘)는 "도주치사, 민식이법, 위험운전치사 모두 각각 별개의 죄로, 실체적 경합 관계로 볼 경우 가장 중한 죄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할 수 있다"며 "각 법의 형량이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 판결이 이뤄질 때는 실체적 경합뿐 아니라 및 양형기준에도 차이가 있어 혐의 적용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강남서 "유족에 송구…내·외부 법률 검토거쳐 도주치사 혐의 추가"
결국 강남경찰서 측은 지난 8일 "사고 경위에 대해 블랙박스·폐쇄회로(CC)TV 분석 등 면밀한 수사와 함께 피의자, 목격자 진술, 수사심사관·법률전문가 등 내외부 법률 검토를 거쳐 도주치사 혐의를 추가했다"고 발표했다.
경찰 관계자는 법률 검토 과정에서 도로교통법 제54조1제1항이 규정한 사고 발생시의 조치에 대해 "사고 발생 시의 조치는 사고 내용, 피해자의 태양과 정도 등 사고 현장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강구돼야 하고, 건전한 양식에 비춰 통상 요구되는 정도의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 점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변호인단 측에서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땐 즉시 정차 후 내려서 구호조치를 해야한다는 점 △앞으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땐 자동차 바퀴가 한 바퀴라도 굴러가도록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 등을 공통된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혼선을 일으킨 부분에 대해 유가족들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피해자보호계 지원을 받아 피해자 유가족의 심리 지원 등 다각도의 유가족 지원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Kri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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