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대신 태블릿 필기에…'잉크 마르는' 대학가 인쇄소
대면수업 확대에도…학생들 태블릿으로 필기·자료공유
종이문화 사라져 대책 막막…인쇄소 매출급감에 폐업도
- 이비슬 기자,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이비슬 유민주 기자 = "대면 수업이 시작되면 학생들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비대면으로 수업하는 동안 PDF 파일로 공부하는 문화가 정착한 것 같아요."
13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근 인쇄소에서 만난 사장 유모씨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30년 넘게 인쇄소를 운영한 유씨에게 코로나19만큼 큰 변화를 준 시기는 없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도 거쳤지만 대학만은 무풍지대였다고 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과 교직원들은 종이 출력물 대신 디지털 파일로 강의자료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유씨 인쇄소도 매출이 70%가량 줄었다. 학교 주변 인쇄소 4곳은 3년간 줄줄이 문을 닫았다.
주말 낮 16.5㎡(약 5평) 남짓한 매장을 홀로 지키던 유씨는 간간이 찾아오는 학생들을 반갑게 맞았다. 매장 가운데 자리한 인쇄기기가 복사 손님의 자료 2~3장을 뽑아낼 때를 제외하곤 적막이 감돌았다.
유씨는 "모두 태블릿PC로 필기하고 자료를 주고받는다"며 "앞으로 종이 문화가 더 빨리 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 필기는 태블릿에…'잉크 마르는' 대학 앞 인쇄소
대학가 인쇄소는 코로나19 회복이 앞으로도 먼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3년간 비대면 강의를 하면서 종이 대신 디지털 파일 사용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어서다.
매출의 가장 큰 몫이던 강의자료 인쇄가 급감한 데다 세미나와 학술행사도 자취를 감춰 대학가 인쇄소의 이중, 삼중고가 계속되고 있다.
서대문구 이화여대 인근의 한 인쇄소도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매출이 반토막 났다. 대면 수업을 시작한 이후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사장 A씨는 "(올해 대면 수업을 시작한 이후에도) 매출이 똑같다"며 "학생들이 과거처럼 강의자료를 많이 출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세대 인근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B씨도 "비대면 수업을 하고 난 이후 매출이 30%가량 줄었다"고 푸념했다.
◇ 공책 필기는 옛말…"무거운 책 필요 없어 유용"
비대면 수업은 캠퍼스 풍경도 바꿔놓았다. 학생들은 교수와 대면하며 종이에 강의 내용을 메모하기보다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태블릿PC에 내려받은 자료에 필기하는 공부법에 더 익숙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요즘은 휴대전화로 종이 출력물을 스캔하면 PDF 파일로 쉽게 변환할 수 있어 파일 변환을 위해 인쇄소를 찾는 경우도 많지 않다.
취업준비생 이모씨(27·여)는 "과거엔 교수님이 태블릿PC 사용을 허락하지 않아 프린트하기 위해 인쇄소를 자주 갔다"며 "취업 준비뿐 아니라 온라인 수업을 들을 때도 태블릿PC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강현모씨(27)는 "태블릿PC에 강의 자료를 넣으면 무거운 책을 들고 도서관에 오가지 않아도 된다"며 "종이에 필기하는 것처럼 복잡한 풀이도 가능해 시험지와 각종 자료가 아주 필요한 사람에게 유용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코로나19 이후 교내외 행사가 사라지자 세미나 예고 포스터부터 발표 자료까지 출력을 문의하는 전화도 뚝 끊겼다. 직장인 임모씨(25·여)는 "과거 학회를 할 때는 한 달에 한 번 500장을 10부씩 인쇄했었다"며 "요즘은 학회도 비대면으로 하다 보니 온라인으로 자료를 나눠주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가 인쇄소는 코로나19 이후에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옛날처럼 책으로 수업하고 발표하면 좋겠지만 문화가 바뀌고 있잖아요. 종이 없는 환경에 우리가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지…." 고려대 앞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유씨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전해졌다.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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