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뷰]계속되는 자립준비청년의 안타까운 선택…그들은 왜?

"떠밀리듯 500만원 받고 나왔더니 벼랑"…캄캄한 미래에 '좌절'
매년 2500여명 사회로 나오지만 …경제적·정신적 '자립' 준비 안돼

편집자주 ...기자(記者)는 말 그대로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기자란 업의 본질은 ‘대신 질문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뉴스1뷰’는 이슈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이 더 이상 남지 않도록 심층취재한 기사입니다. 기록을 넘어 진실을 볼 수 있는 시각(view)을 전해드리겠습니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동규 임세원 기자 = "최근 광주에서 자립준비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아는 형을 통해서 들었는데 이해가 가요. 일단 시설을 나오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이 없으니까요. 저도 500만원의 자립지원금을 받고 나왔는데 순식간에 다 써버리고 결국 토토까지 손을 댔습니다"(보호시설 출신 22세 A씨)

"자립하자마자 이야기를 깊게 털어 놓을만한 어른이 없었다는 점이 저한테는 크게 다가왔어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결혼하거나 집이나 차 같은걸 살만한 자금을 모으기 어렵다는 점도 자립준비청년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입니다" (보호시설 출신 21세 B씨)

정부가 최근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과 급격하게 오른 물가를 감안하면 지금의 지원으로는 '자립'에 따른 두려움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심리적인 지원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위탁 가정의보호 아동이었다가 만18세가 되면 보호가 종료되는 청년을 말한다.

◇시설 나오고서 '막막'…"사회 적응하기 매우 힘들었다"

2일 만난 서울의 한 보육시설 출신의 A씨(22)는 보호종료가 끝난 후 자신이 겪었던 막막함을 토로했다. 생활고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립준비청년들의 처지가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A씨는 "우울감을 느끼는 자립청년들이 많은 이유는 갑자기 만18세가 되면 시설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나가자마자 의식주 측면에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며 "500만원을 받고 그냥 사회로 나가라는건데 돈 관리도 안해 봤던 친구들이 그거 금방 다 써버린다. 경제관념이 없는 상태에서 큰 돈을 만지니 유흥에 쓰기도 하고 불법 도박에 돈을 쓴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도 지원금을 받고 자립수당(월35만원)을 받았는데 생활하기 힘들어 좀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토토사이트를 통해 불법으로 금전 거래를 했다. 그런데 그 사이트가 망해서 충청도까지 내려가 건설 용역까지 뛰었다"며 "그런데 이 모든게 다 금전 지원이 부족해 불법이라도 목돈을 벌려고 하는 심리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A씨는 시설을 나오면서 받은 500만원은 한 달만에 사라졌다. 200만원은 거주할 원룸 보증금과 월세로, 300만원은 가구와 식기 등 살림살이를 장만하는데 사용했다. 지난해 기준 서울 원룸 평균 월세는 40만원에 이른다. 자립과 동시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A씨는 "최근 자립준비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해가 간다"며 "도와주는 사람이 많이 없다면 사회에 나서기가 막막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호종료 후 3년째 자립해 살고있는 B씨(21)도 처음 시설을 나온 후의 두려움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B씨는 "처음 자립했을 때 어려운거나 모르는 것을 마음 놓고 물어볼 어른이 없다는게 힘들었다"며 "전기요금 내는 것부터 사소한 것을 알려주는 어른이 없었다는 게 가장 힘들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그래도 극단적인 생각까지는 안 해봤는데 다른 자립준비 청년 친구들 중에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시설에서 생활할 때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회로 나가게 되면 우울증을 많이 앓는 것 같다"고 말했다.

B씨는 "자립준비청년들은 수당만으로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데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기 힘들어 경제적 측면에서 앞으로의 자기의 모습이 잘 안보였다는 점도 청년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몬거 같다"고 밝혔다.

2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주최로 열린 ‘서울 청년의 생명을 살려라’ 100인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발제를 경청하고 있다. 2022.8.23/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자립준비청년 절반 '자살 생각했다'…경제적 이유 가장 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는 매년 2500여명의 자립준비청년(2021년 보호종료아동에서 변경)이 발생하고 있다.

보호기간은 올해부터 만24세까지로 연장이 가능하지만 연장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립준비청년들은 보다 큰 자유를 원하고, 시설도 이들을 더 보호해 줄만한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자립준비청년들의 경제적, 심리적인 부담감도 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호종료아동 자립 실태 및 욕구조사’따르면 2020년 기준 자립준비청년 중 세후월급이 300만원 이상인 청년은 조사 대상 1175명 중 11명으로 0.9%에 불과했다. 200만원 미만인 비중은 61%로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같은 조사에서 자립준비청년 중 50%가 살면서 한 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로는 경제적 이유가 33.4%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가정생활문제(19.5%), 정신과적 문제(11.2%)순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심리적 지원 중요"

익명을 요청한 서울시내 한 아동보호소 사무국장은 "우리 센터는 보호가 종료된 자립준비청년들과도 친밀하게 지내는 편인데 보호 종료 이후 관리를 하는 아이들을 위한 운영비라든지 보조금 같은 게 전혀 없다"며 "현재까지는 우리가 발품을 팔아서 후원자들을 통해 운영비 등을 마련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자체에서 배정해주는 자립전담요원도 현재 시설당 1명인데 시설 내 아동과 자립준비청년들까지 관리하는게 힘에 버거워 인원 충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만24세까지 보호기간이 연장할 수 있는 것의 취지는 좋지만 한창 자유분방한 젊은 나이 때에 시설에서 생활하면서 규제를 받아야 하는데 이러면 아이들도 힘들다"며 "보호종료 아동을 전담하는 요원과 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요원이 따로 있어야한다. 아이들과 좀 더 유대관계가 형성된 사람들의 충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립준비청년이 되기 전부터 시설이나 지자체에서 준비를 충실히 하게 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보호가 종료되는 아이들의 심리적 뿌리는 보호기간 동안에 형성되기 때문에 보호를 하고 있을 때부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 교수는 이어 "자립준비청년들 중에서도 자신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잘 모르는 아이들이 많은 만큼 정보접근성을 높여 주고, 청년들 중에 시설과 연락이 두절되는 비중이 최대 40%인 만큼 이들을 정부와 지자체에서 직접 찾아가서 도와주는 방법까지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자립준비 청년을 위한 대책을 최근 발표했다. 이달 월 35만원으로 인상된 자립수당을 내년부터 40만원씩 지급하고, 체계적인 사후관리를 담당하는 자립전담기관을 연말까지 전국 17개 시·도에 설치하기로 했다. 인력 추가 확충 등을 통해 맞춤형 사례관리 지원 대상자도 올해 1470명에서 530명 확대해 총 2000명을 지원한다.

d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