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어" 13년 동안 10억원 뜯은 '기도원 숙모님'
하느님 응답을 받은 '선지자'라 속여
기도 명목으로 3명으로부터 10억원 상당 뜯어내
비밀유지, 전화로만 연락 등 치밀하게 범행
- 권혜정 기자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건설업에 종사하는 A(49)씨가 '영적인 능력'이 있다는 이모(72·여)씨, 일명 '숙모님'을 만난 건 지난 2005년.
'숙모님'은 경기 가평군과 하남시에 있는 기도원 일대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숙모님은 하느님의 응답을 받아 '예지력'이 있는 사람으로 산속 동굴에 기거하며 하루에 한끼만 먹고 24시간 내내 기도에만 열중하는 '하느님과 소통하는 선지자'였다.
숙모님과 A씨 등 교인들이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선전화' 뿐이었다.
A씨 등이 숙모님의 유선전화 자동응답기에 "연락 바랍니다"라는 음성을 남기면 '하느님의 응답'을 받고 숙모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숙모님은 A씨에게 "딸이 성폭행을 당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응답이 왔다"며 기도 명목으로 2500만원을 받아갔다.
이후 "마귀가 들어와 기도를 다시 해야 한다"며 수 차례 헌금을 받아 챙겼다.
또 "천국에 보내주겠다며" 3500만원의 헌금을 요구하는 등 작정헌금, 십일조 등을 수백차례에 걸쳐 요구했다.
헌금을 위해 사채까지 끌어 쓴 A씨가 "헌금을 낼 돈이 없다"고 하소연하자 숙모님은 "복 달아나는 소리 하지 마라. 장기라도 팔아서 헌금을 내라"며 협박해왔다.
이같은 협박 끝에 A씨는 지난 8년동안 숙모님에게 260회에 걸쳐 4억4000만원을 바쳤다.
숙모님의 이같은 '기도행위'가 사기로 드러나자 A씨는 현재 우울증과 정신과 치료를 받을 만큼 큰 정신적 충격에 빠졌다.
A씨 외에 또 다른 피해자들은 정신적 피해와 함께 숙모님에게 헌금을 바치는 과정에서 전세집을 팔고 땅을 파는 등 물질적 피해까지 입었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천국行'을 빌미로 교인들로부터 10억원 상당을 뜯어낸 혐의(사기)로 일명 '숙모님'인 이씨를 구속했다고 3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2001년 8월14일부터 지난해 7월17일까지 A씨 등 피해자 3명에게 자신을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신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속여 각종 기도 명목으로 헌금을 강요해 10억2000만원 상당을 받아 챙긴 혐의다.
이씨는 이같은 방법으로 A씨 등 3명의 피해자로부터 29~260회에 걸쳐 8000만원부터 5억5000만원 상당을 편취했다.
이씨는 주로 피해자들에게 "하느님으로부터 응답이 왔다"며 "헌금을 안 내면 사람이 죽는다"라는 식으로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피해자들에게 '동선보고'를 시키며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이씨에게 보고하기까지 했다.
이씨의 '영적인 능력'은 유도 질문으로 시작됐다.
이씨는 피해자들에게 "요즘 집안에 무슨 일이 있지?"라는 식으로 유도 질문을 던지고 이에 피해자가 "아이들이 넘어져 다쳤다"고 말하면 이 말에서 힌트를 얻어 "하느님의 응답이다. 아이들이 죽을 수 있었는데 (내가) 살려 놓은 것이다"라는 식으로 답했다.
이씨는 또 헌금을 뜯어 내기 위해 '탐문조사'도 서슴지 않았다.
이씨는 피해자들 지인에게 "요즘 00씨 집안에 무슨 일 있지?"라고 묻는 등 나름대로 조사를 벌여 피해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이후 이같은 방법으로 모은 정보를 조합해 피해자들의 길흉을 예견한 것처럼 속였다.
이씨는 '천국行'뿐만 아니라 십일조, 감사헌금, 작정헌금 등 온갖 명목을 가져다 대며 헌금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은 '가족과 부모님이 지옥에 간다'라는 생각에 울며 겨자먹기로 헌금을 바쳤다.
이씨는 13년 동안 장기간 범행을 위해 '철저한 비밀유지'를 원칙으로 했다.
그는 "(헌금에 대한) 비밀을 지키지 않을 경우 마귀가 틈을 타 지금까지 복을 허사로 만든다"고 협박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헌금으로 인해 가정이 파탄날 지경에 처해도 비밀을 유지했다. 이 비밀은 부부간에도, 자매간에도 철저하게 지켜졌다.
'하루에 한끼만 먹고 동굴에서 기도만을 한다'던 이씨는 경찰조사 결과 강동구에 11억원 상당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사는 곳은 동굴이 아닌 강동구 둔촌동의 6억짜리 빌라였다.
그는 빌라 내 5개의 방마다 벽걸이 텔레비전을 걸어놓고 수개의 명품가방과 밍크코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또 매월 1000만원 상당의 백화점 쇼핑을 즐기고 해외여행을 밥 먹듯 다니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이씨의 이같은 범행은 지난해 8월 이씨로부터 헌금을 요구받고 힘들어하던 D씨(여)가 자신의 언니에게 이같은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수면 위에 드러났다.
D씨는 우연히 자신의 언니도 이씨에게 헌금을 바친 사실을 알게 됐고 이씨가 자신과 언니에게 한 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이씨의 영적인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헌금 때문에 남편과 이혼하게 생겼다"고 이씨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씨는 D씨의 거짓말에 속아 "하느님이 보여주셨다. 남편과 크게 싸우고 이혼 당할 것"이라고 답했다.
D씨의 언니도 역시 이씨에게 "딸이 임신한 것 같다"고 테스트를 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기도 결과 임신이다"라고 답했고 이들은 이씨 사기 행각에 확신을 가졌다.
이후 이씨에게 헌금으로 주었던 1억원을 돌려 받은 이들은 이같은 사실을 주변 교인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이씨는 자신에 대한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지난해 9월 아들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도피했다.
두 달 뒤 국내로 몰래 입국한 이씨는 대포폰을 사용하며 은신하다 이달 21일 강원도 원주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진실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피해자를 악용해 범죄를 저질렀다"며 "드러난 피해자 3명 외에도 피해자들이 수십명에 달하지만 대부분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창피함에 피해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씨의 치밀한 범죄에 누구든지 당할 수밖에 없었다"며 "피해자들이 용기를 갖고 하루 빨리 회복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jung907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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