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추석인데"…매맞는 다문화가정 여성 '폭증'

"동남아 이주여성 가정폭력 출신국 영향 받아"
"농어업인 가정폭력 가능성 일반직의 208%"
"뉴욕시경의 체계적 가정폭력 정책 도입해야"

(서울=뉴스1) 전성무 기자 = 추석을 앞두고 서울 송파구 서울놀이마당에서 열린 송편나눔 한마당에 참석한 결혼이주여성들. (사진은 이 기사의 내용과는 무관함) /뉴스1 © News1 양동욱 기자

</figure>캄보디아 이주여성 츠호은릉엥씨(한국명 초은)는 2008년 4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한국에 정착했다. 그러나 국제결혼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가 시집올 때 나이는 18세.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평범한 이주여성이었지만 20살 연상의 남편은 결혼 후 매번 술을 마시고 아내를 폭행 했다.

초은씨는 그렇게 남편의 폭행에 시달려오다 이듬해 1월 30일 우발적으로 남편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이때 그녀는 임신 3개월. 초은씨는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대구교도소에 수감됐다. 초은씨는 가해자지만 동시에 가정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국제결혼을 통한 다문화가정은 매년 평균 3만여 세대씩 생겨나고 있다. 이 가운데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국가 여성과 한국인 남성이 결혼하는 사례는 급증 추세다.

이와 동시에 동남아 이주여성들이 가정폭력에 노출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뉴스1은 추석을 앞두고 초은씨 같은 이주여성들이 겪는 다문화가정 폭력 실태를 점검했다.

◇ 매년 급증하는 국제결혼, 농어촌 지역은 40% 육박

다문화가정이란 일반적으로 국제결혼에 따른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 가족,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이주남성 가족, 북한이탈 이주민 가족을 의미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결혼 총 건수는 2만8325건으로 한국남자와 외국여자가 결혼한 경우는 72%에 해당하는 2만637건으로 집계됐다. 이중 베트남·필리핀·캄보디아·태국 등 동남아 국가 여성과 결혼한 사례가 9650건으로 46.7%에 달했다.

2004년 2461건이었던 한국남자-베트남여자의 결혼 사례는 매년 폭증하다 지난해에는 2.6배가량 늘어난 6586건을 기록했다. 한국남자-필리핀여자의 결혼도 2004년 947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2.3배 늘어난 2216건으로 나타났다.

2008년에는 총 32만7715건의 결혼 중 국제결혼 비율이 11%였는데 농어업 종사자-외국여자 결혼 비율은 전체 농어촌 지역 결혼의 38%(2472건)를 차지했다.

다문화가정 이주여성들의 신변문제로 인한 상담건수도 매년 크게 늘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가 집계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이주여성들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25만6539건의 상담을 센터에 의뢰했다.

2006년 센터개소 이후 6년간의 상담현황을 보면 2006년(11~12월) 764건, 2007년 1만3277건, 2008년 1만9916건, 2009년 4만3454건, 2010년 5만4194건, 2011년 5만8044건, 2012년 6만6890건으로 집계됐다.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연도별 집계가 시작된 2007년과 비교해 5배가량 상당건수가 급증한 것이다.

지난해 전체 상담현황을 국적별로 파악한 결과 베트남 이주여성이 3만4872명으로 전체의 52.1%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필리핀 7399건, 중국 9858건, 캄보디아 4570건, 우즈벡 2664건, 몽골 2598건, 러시아 1396건, 태국 1268건, 일본 837건 등 순으로 동남아 국가 이주여성들의 가정폭력상담이 주를 이뤘다.

전체 17개 상담유형 가운데 가정폭력은 생활상담 19.4%, 부부갈등 16.2%, 이혼 13%, 체류문제 11.4%에 이어 5번째로 많은 10.5%로 조사됐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는 가정폭력이 2011년에 비해 2673건 증가하는 등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다문화가정의 부부갈등과 가정폭력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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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의 국제결혼 현황자료. © News1

</figure>◇ 다문화가정 폭력 "이주여성 국적 영향 받는다"

그렇다면 이주여성들이 겪는 가정폭력은 왜 발생하고 매년 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윤오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2007년 6월 한양대에서 '아시아 여성의 한국으로의 혼인이주와 정착과정에 관한 조사'로 수집됐던 600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분석했더니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됐다.

일본, 중국, 베트남 이주여성을 상대로 그들의 가정폭력 피해경험이 이주여성의 개인적 요인 및 가정환경과 어떤 관계인지 조사한 결과 ▲출신국적 ▲연령 ▲언어학습 수준 ▲남자 배우자의 직업형태가 핵심 변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적별로는 '가정폭력 피해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조사대상자 가운데 베트남 여성이 126명(63.6%)으로 가정폭력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고 그 다음으로 일본여성(39명, 19.7%), 중국여성(33명, 16.7%) 순이었다.

여성의 연령이 증가할수록, 한국어 의사소통 실력이 좋을수록 가정 폭력 노출 비율은 감소했다.

배우자의 직업형태도 유의미한 요인으로 꼽혔는데 가령 남자 배우자가 단순노무직인 경우 일반직군 남자보다 이주여성에게 가정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농어업 종사자가 일반직군 남자들보다 가정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208.7%나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

조 교수는 "연구 결과 다문화가정의 가정폭력이 하나의 요인에 의해 촉발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확인했다"며 "출신국적과 연령 등 이주여성이 갖고 있는 개인적 요인과 한국 이주 후 경험하게 된 상황적 구조적 영향을 받아 복합적으로 발생 한다"고 분석했다.

또 "가정폭력 고위험군 배우자 남성에게도 가정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다양한 욕구지원 서비스가 필요하다"며 "이주여성이 갖고 있는 강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전문화된 개별 가정폭력 예방 프로그램들을 실시해야한다”고 지적했다.

◇ 다문화가정 폭력경험 어머니, 자녀에게도 영향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는 법무부 교정본부와 함께 지난 7월 경기도의 한 교도소 수형자 545명을 상대로 아동·청소년기 가정폭력 피해경험, 가정환경, 청소년 비행경험, 성장 후 가정폭력 가해경험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치안정책연구소가 지난 10일 발간한 '치안정책리뷰'에 실린 신동욱 연구관의 연구자료 '아동·청소년기 가정폭력 경험이 성인범죄에 미치는 영향'은 이 같은 조사결과를 담았다.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486명 중 절반이 넘는 249명(51.2%)이 '아동·청소년기에 가정폭력을 직접 겪거나 부모간의 가정폭력을 목격하는 간접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 가정폭력 직접 경험은 226명(46.5%), 간접 경험 176명(36.2%), 직·간접 모두 경험 153명(31.5%)으로 나왔다. 응답자들을 현재 재소하게 된 죄종별로 구분한 결과 강간·강제추행 등 성폭력사범의 아동·청소년기 가정 폭력 경험률이 63.9%로 가장 높았다.

이 밖에도 살인범은 60%, 절도범 56%, 강도 48.8% 순으로 강력범죄자가 다른 범죄자들보다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경험한 비율이 높았다.

아동·청소년기에 직접 경험한 가정폭력을 유형별로 세분화 하면 훈육 목적의 회초리 사용 등 체벌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는 등의 경미한 신체폭력, 언어폭력, 몽둥이 등 문건으로 때리는 심각한 신체폭력 순이었다. 모든 유형에서 아버지가 가해자인 경우가 어머니보다 많았다.

즉 아동·청소년들은 부모에게 직접적인 가정폭력을 당하거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등의 폭력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범죄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신 연구관은 "가정폭력을 가정 내의 문제가 아닌 중요한 치안과제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며 "피해가정의 아동·청소년 심리상담과 가족상담기법 등 전문소양을 갖춘 가정폭력 전문경찰관을 양성하는 등 특화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찰 가정폭력 정책부실, "뉴욕경찰 성공사례 도입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4대 사회악 척결'에는 가정폭력도 포함됐다.

경찰청은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이런 정책 기조에 부응하기 위해 상습 가정폭력 가해자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등 가정폭력 예방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정 수사하고 관련법상 법원의 허가 없이도 피의자를 격리할 수 있는 임시조치 신청을 의무화했다. 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와 협조해 경찰관의 현장출입과 조사를 거부한 사람에 대해 과태료 500만원 이하를 부과하는 내용의 제제수단을 마련하고 내년 1월 3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경찰은 현장대응 전문성 확보 차원에서 경찰교육센터별 '가정폭력 대응 전문교육 과정', 경찰교육원에 '가정폭력 강사 양성과정'을 신설하고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전환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찰의 가정폭력 예방 정책이 새 정부 기조에 맞춰 부랴부랴 짜낸 부실한 결과물이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뉴욕시경찰청(NYPD)의 경우 이미 1995년부터 '가정폭력전담반(Domestic Violence Unit)'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맨해튼 뉴욕시경 본부에 20여명 규모의 인원으로 구성된 가정폭력전담반은 뉴욕시경의 전반적인 가정폭력 예방대책 시행을 조정한다.

가정폭력예방경찰관, 조사요원, 교수요원, 승진자, 주택국 전입직원 등을 상대로 가정폭력 관련 전문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32개 시범 관할구역에 자체 가정폭력전담반을 설치해 가정폭력 관련사건 수사, 피의자 체포 및 피해자 지원 강화에 나서고 있다. 뉴욕시경에는 총 450여명의 가정폭력예방경찰관을 두고 76개 관할구역 전부에 최소 1명 이상 배치하고 있다.

한국경찰은 '4대 사회악 척결'을 한다는 취지로 지방청과 경찰서별로 성폭력전담수사팀과 불량식품수사전담반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같은 4대악 가운데 하나인 가정폭력의 경우 경찰청이나 지방청 차원의 체계화된 전담수사반은 없고 서별로 전담경찰관을 별도 지정해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치안정책연구소 김대한 연구관은 "지난해 가정폭력 관련 상담건수가 검거건수의 10배가 넘는 11만3178건 이었다"며 "한국경찰도 가정폭력 사범을 구속수사하고 바로 유치장에 입감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도'를 도입하는 등 대응을 강화하는 시점에서 뉴욕시경의 다양한 실험과 성공사례를 검토해 우리 실정에 맞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lenn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