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에서 노숙인으로 "올 봄엔 희망씨앗 뿌릴 것"

풍찬노숙 7년째 이봉춘씨, 영농재활 새삶 도전
"재기에 성공한 뒤 떳떳하게 가족 찾을 것"

이봉춘씨는 이번 설 명절도 외롭게 보내야 한다. 그래도 '떳떳하게' 재기하겠다는 다짐은 버리지 않는다. © News1

</figure>"찾아보려고 한 적도 없어요. 내가 이 모양인데 찾으면 뭐합니까. 재기해서 생활터전을 마련하면 떳떳하게 찾아보겠지만 아직은 짐밖에 안 되는데…."

이봉춘씨(61)는 이번 설에도 헤어진 가족을 찾지 못하고 외롭게 명절을 보내야 하지만 '떳떳하게'라는 대목에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메마르고 지친 눈빛에도 잠깐 눈물이 고이며 반짝였다.

올 봄에는 고향 부산을 떠나 서울에 올라온 뒤 시작한 7년 간의 노숙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을 뿌릴 수 있어서다.

이씨는 이번 설 연휴가 지나면 경북 예천의 한 시골농가에서 농삿일을 시작한다. 생애 처음으로 농부가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개척해야지요. 내 삶을 준비해야겠죠."

새봄이 오면 이씨가 100평의 밭에 경작을 시작하는 건 농작물이 아니라 '새 삶'이다.

◇딸에게 찾아온 백혈병과 함께 무너진 삶

2006년까지만 해도 김씨는 부산시청 공무원이었다. 주차단속을 하는 기능직이었지만 월급은 200만원이 넘었다.

그해 4월 사표를 내고 아는 사람을 피해 무작정 상경해 쪽방, 고시원 등을 떠돌아 다니기 시작한 건 갑작스레 둘째 딸아이에게 찾아온 백혈병 때문이었다.

1970년대 말 사우디 공사현장에서 5년간 지게차 기사로 일하며 돈도 제법 벌어 결혼 전에는 부산에 번듯한 집도 마련했다.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위해 당시 10만원 조금 넘는 박봉이던 기능직 공무원이 됐다.

1983년 첫째 딸에 이어 3년 뒤 둘째 딸이 태어나면서 네 가족은 옹기종기 화목하게 살았다.

그러나 둘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에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급성백혈병이라고 했다.

"그때 봉급이 20만원 정도 됐어요. 둘째 데리고 부산과 서울 병원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늘데요. 갚고 빌리고 또 갚고 빌리고 하다보니 사채도 쓸 수밖에 없었죠."

재산압류까지 들어와 집은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2004년 부인과 합의이혼을 했다.

병원에 한 달씩 입원하면서도 학업을 이어가던 딸은 이듬해 1월 결국 고교 졸업장도 받지 못하고 생을 달리했다.

그렇게 딸을 보내고 빚에 쫓겨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뒤로 초기에는 공사판에서 일도 했지만 결국 술만 퍼마시다 자연스레 노숙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고향을 떠난 뒤 부인과 큰 딸을 만나지 못했고 1년 정도가 지나니 전화번호도 바뀌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연락도 완전히 끊겼다.

"첫애가 고3 되는것까지 봤는데 지금은 연락처도 몰라요. 찾아봐달라고 한 적도 없고. 5년 전에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살고들 있을지…."

◇"좋은 공기 마시며 새 삶 개척해 보겠다"

지난해 이맘때까지만 해도 영등포 보현의 집에 머물고 있던 이씨에게 희망은 사치였다. 재기를 노려보려해도 했지만 1억원이 넘는 채무가 발목을 잡았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시가 지난해 처음으로 운영을 시작한 노숙인 대상 영농 프로그램에 신청했고 양평 노숙인 쉼터에서 지원을 받아 파산신청을 해 채무가 면책됐다.

양평의 서울시농업기술센터에서 7개월 동안 영농교육을 받은 이씨는 설 연휴가 지난 뒤 서울시가 임대해준 예천의 270평 부지에서 농사를 시작한다.

몸을 누일 생활공간과 농기구를 둘 창고, 씨앗을 뿌릴 밭 등이 생겼다.

초기 지원금으로 받은 200만원을 씨앗, 농기구 등을 사는 데 쓰고 나니 통장에는 남은 돈도 없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시골이라서 농사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려면 읍내에라도 나가야 하는데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서 걱정이예요. 고물차라도 한 대 있으면 큰 도움이 될텐데. 처음 하는 일이라 막막하기도 하죠."

그래도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라며 걱정보다는 의욕을 앞세웠다.

이씨는 "모든 건 봄이 돼봐야 하지 않겠어요. 여기선 취직도 안 되요. 좋은 공기 마시며 내가 한 번 개척해보겠다는 생각에 내려가는 건데"라며 '풍찬노숙'에 다 빠지고 얼마 남지 않은 앞니를 드러내며 희망찬 웃음을 지어보였다.

ejkim@news1.kr